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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 신약 개발에도 'CVID' 온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활용 성큼

'불가역적 치료' 기대감도 커져

50년 뒤엔 모든 질병 사라지길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비핵화가 논의되면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라는 용어가 친숙해졌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신약 개발에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치료’가 적용될 수 있을까.

질병 치료제로 개발돼 각국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은 의약품의 주된 역할은 증상을 완화하거나 질환의 진행을 느리게 해주는 것이다. 완전하면서 불가역적으로 질병의 싹을 없애주는 약물은 사실상 지구상에 없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편집기술의 일종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성큼 상용화 문턱에 이르면서 질병 치료에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 특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병하는 대부분의 희귀질환에 CVID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다.

인간은 누구나 46개(23쌍)의 염색체를 가진다. 그 염색체에 DNA라는 분자 형태로 유전정보를 저장하고 있다. 우리는 23쌍의 염색체로부터 그때그때 필요한 유전자들을 RNA라는 형태의 복사물로 만들어 단백질 생산에 사용한다. 그리고 RNA는 일정 횟수 이상 사용되면 세포 내에서 폐기된다. 우리가 복용하는 의약품은 RNA로부터 만들어진 단백질의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원하는 효능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단백질 또는 RNA 수준에서 작용하는 의약품은 질병을 치료하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염색체의 DNA 수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잘못된 복사물인 RNA를 제거하기 위해서 계속 약물을 투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3조개에 달하는 염색체 염기서열 중에서 특정 부위를 임의로 편집하는 기술이다. 기술이 입증된 후 불과 몇 년 만에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혁명적인 기술로 꼽힌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것이 유전자 염기서열을 읽을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읽을 수만 있었던 유전자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이른바 ‘맥가이버 칼’인 셈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당장 유전병 치료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병은 염색체의 유전정보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질환이다. 혈액응고 유전자의 이상으로 생기는 혈우병, 헌팅틴 단백질의 유전자 이상으로 발병하는 헌팅턴병, 디스트로핀이라는 단백질 유전자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듀센형 근이완증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가 생긴 유전자를 유전자가위로 수정하면 근본적으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질병 치료제를 넘어 원하는 유전자를 고를 수도 있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기 전에 특정 유전자를 편집해 원하는 유전 형질을 얻는 식이다. 다소 성급한 예상이기는 하지만 대머리 유전자를 없애 탈모를 근본적으로 예방한다거나 눈동자 색깔까지 마음대로 고르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이는 추후 생명윤리법을 둘러싸고 치열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글로벌 바이오 업계는 내년부터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치료제 개발이 본격적으로 임상시험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미 발생한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서 나아가 애초에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의약품이 머잖아 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식이 고스란히 물려받는 유전병은 지금도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는 의미에서 천형으로 불리지만 유전자 편집기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된다면 수많은 유전병 환자와 그 유전자를 보유한 사람들에게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00년 후 아니 50년 뒤에는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모든 질병이 천연두처럼 교과서에만 볼 수 있는 잊혀진 질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지성 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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