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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도 안읽고 투자'···크립토 펀드의 엇나간 욕망

크립토펀드. 암호화폐 생태계의 마중물인가, 황소개구리인가

일부 크립토펀드, 6개월 내 회수 예고 후 단기간 상장 요구하기도

단기 수익 실현위해 프라이빗 물량 몰래 처분하기도

일부에선 '백서조차 읽지 않고 투자한다' 증언도…투자 업계 내부서도 '너무한다'

폭락한 코인 시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인 투자자에게

업계, "1년 이상 투자 회수 '락업'기간 설정해야" 목소리


“우리는 6개월 후에는 무조건 엑시트(EXIT) 합니다. 6개월 안에 상장해서 수익 낼 수 있게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

국내 한 암호화폐 분야 컨설팅 업체 직원 A씨는 최근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중국계 중견 규모 블록체인 분야 전문 투자사(크립토펀드·Crypto Fund) 관계자와의 미팅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A씨는 “이 투자사의 경우 프로젝트의 토큰이코노미가 탄탄하게 설계됐는지,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분석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며 “투자 기한은 6개월이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이 기간 내에 상장할 것부터 요구했다”고 전했다. A씨는 “투자사가 이런 요구를 하니 투자를 받는 기업 대표도 암호화폐 발행 전부터 상장 준비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며 “사업의 본질보다 토큰 가격이 우선되니 안타깝다”고 했다.

신생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은 통상 전통 벤처캐피탈(VC)의 투자를 받는 방식보다 ICO를 선호한다. 더 많은 투자금을 더 짧은 시간 내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다만 기관 투자를 받고자 하는 수요는 여전히 크다. 과거 실적보다 미래 계획을 앞세워 투자유치에 나서야 하는 ICO의 특성상 투자자들은 팀 멤버와 어드바이저의 구성뿐만 아니라 유명 크립토펀드가 초기단계에 투자를 했는지를 주요 투자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발행사 입장에서는 퍼블릭 ICO에 앞서 여러 군데의 투자기관을 미리 확보할 수 있다면, 이후 일반 투자자들이 믿고 들어올 수 있는 레퍼런스를 마련하는 효과가 있다.



이에 크립토 펀드가 우수한 프로젝트를 발굴해 초기 투자하고 장기간 해당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유지한다면, 스타트업은 실질 가치 창출에 집중하고 일반 투자자도 커뮤니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돼 블록체인 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데 만약 이런 크립토펀드가 ICO가 종료되는 직후 차익을 노리고 모든 코인을 처분해 버리고 나간다면? 아니, 그 이전에 해당 프로젝트의 백서조차 읽어보지 않고 들어왔다면?

이같은 일이 크립토펀트 업계 내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다. 같은 크립토 펀드끼리도 특정 펀드 이름을 거론하며 “이 정도는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원성이 나온다. 크립토펀드는 과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산업 생태계에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을까.

◇‘백서조차 읽지 않는다’ 의심도…“내 수익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요?”=

국내 크립토 펀드사에 재직하는 B매니저는 “최근 국내외 크립토 펀드사 관계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백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한 투자사 실무진이 대뜸 ‘저흰 백서 잘 안 봐요,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중요한가요’ 하는 말을 했다”며 “프로젝트의 잠재성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기본인 백서조차 읽어보지 않는 펀드사가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업계에서는 프로젝트의 성공보다 펀드사의 수익을 단기간에 극대화하려는 추세가 이미 공공연하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전한다. 정성동 파운데이션X 전략팀장은 “프로젝트 육성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프라이빗 세일가와 퍼블릭 세일가의 차익만을 목적으로 한 크립토펀드의 움직임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크립토펀드가 보유한 토큰이 초기에 빠져나가게 되면 토큰 가격이 폭락하고, 이후에는 생태계 참여자의 이탈로 이어져 결국 프로젝트를 장기적으로 끌고나가기는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Z코인(가칭)’의 ICO 이전 기관 투자자로 참여했던 펀드사가 거래소 상장 직후 물량 처분에 나서면서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진다.

최근 ICO를 마친 ‘Z코인(가칭)’은 거래소에 상장이 되자마자 가격이 폭락했다. 원인은 ‘Z코인’ 프로젝트에 투자한 한 크립토펀드가 상장과 동시에 일제히 보유하고 있던 물량을 상장가에 처분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투자 업계의 증언이다. 이더스캔을 통해 해당 프로젝트의 트랜잭션 기록을 확인해 본 결과, 거래소 상장일을 전후로 해 특정 지갑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대량의 토큰이 매도된 모습이 확인됐다. 매도자로 지목된 투자사는 아직 투자 포트폴리오가 공개되지 않은 신생 크립토 펀드다. Z코인의 가격하락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고스란히 ICO에 참가한 일반 참여자의 투자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암호화폐 기업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이준수 스토리체인 대표는 또 다른 펀드사의 사례를 전했다. 그는 “최근 싱가폴 ‘S’펀드의 경우 한 암호화폐의 프라이빗 세일의 기관 투자자로 참여한 뒤 거래소 상장 전 가격이 오르자 탈중앙화 거래소와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투자한 토큰을 매도해 수익을 챙겼다”며 “이 프로젝트는 추가 기관투자를 받아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상장 전에 프라이빗 세일 물량이 시장에 풀리자 투자를 논의하던 다른 투자사들이 ‘어떻게 된거냐’며 모조리 손을 떼면서 여전히 마케팅 자금 확보 문제에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투자사의 이같은 행태가 이어지면서 펀드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도 생기고 있다. 유럽기반의 E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외국계 펀드의 매니저는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던 중 함께 투자에 참여했던 중국계 크립토펀드가 ICO가 시작하기도 전에 본인들이 확보했던 가격에 낮은 수익을 붙이고 전량 덤핑하고 넘기면서 커뮤니티에서 온갖 비판이 쏟아졌다”며 “그런식으로 물량이 풀리면 우리 투자사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는데 기본적인 투자 윤리도 없는 것 같다”며 비난했다.

◇“크립토 시장 특성 반영한 ‘락업’ 기간 설정”하자 목소리…호로위츠의 ‘a16z크립토’ 최대 10년 이상 투자 원칙 밝히기도=

업계에서는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이 일부 크립토 펀드들의 부도덕한 투자행태가 얼마든지 가능한 구조라고 보고 있다. 일반 스타트업 투자의 경우 초기 투자 이후 수년간 성장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후속 투자를 받아 기업 가치를 올리고, 이후 매각이나 상장을 통해 초기 투자자가 이익을 받는 구조다. 이에 법적인 강제가 없더라도 기관들이 기업 자체의 가능성에 주목해 장기 투자를 각오하고 투자를 감행할 수 있지만, 암호화폐 생태계의 경우 초기 투자 직후에도 ICO, 상장 등 투자사가 차익을 남길 수 있는 단계가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주목도만 높일 수 있으면 굳이 백서를 보지 않더라도 투자 수익 회수가 가능한 셈이다.

암호화폐 업체가 직접 크립토 펀드의 도덕성을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호소가 나온다. ICO를 준비 중인 국내의 한 프로젝트의 대표는 “현재 업계에는 프로젝트에 비해 투자하려는 펀드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군소 프로젝트 입장에서는 무리한 펀드의 요구도 충족해주기 위해 아등바등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 내부에서도 서로의 평판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홍성욱 해시드 이사는 “크립토 펀드 업계 자체가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부 유명펀드를 제외하고 어떤 펀드가 신뢰성 있는 펀드인지 업계에서도 구별이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에 크립토 펀드들이 최소한의 투자를 한 후 일정기간동안 토큰을 판매하지 않는 일종의 ‘락업’ 기간을 자발적으로 설정하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암호화폐 분야 액셀러레이터인 디블락의 오현석 대표는 “경쟁력 있는 프로젝트가 육성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특성을 고려한 충분한 락업 기간을 협의하고 적절한 공조를 통해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나가야 할 것”이라며 “프로젝트의 내용에는 관심조차 없는 투자 행태가 지속 된다면, 결과적으로 양질의 프로젝트가 육성되는 시장이 조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기간이 적당할까. 김한석 블로코 홍보 매니저는 “프로젝트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정적인 프로젝트 육성을 위해선 최소 6개월에서 1년 사이 정도의 락업 기간을 두고 투자가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최근에는 3년 이상의 락업 기간을 가지고 프로젝트와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탄생하는 크립토 펀드들은 중장기간의 락업 기간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대형 벤처캐피탈 안드리센 호로위츠가 설립한 크립토펀드 ‘a16z크립토(Crypto)’는 투자한 프로젝트에 유치한 자금을 2~3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회수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크리스 딕슨(Chris Dickson) a16z 책임은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전략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옳다”며 “단기적인 가격변동을 통한 수익보다는 프로젝트의 장기적인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해외 대형 크립토펀드인 ‘판테라 캐피탈’ 역시 중장기간의 투자자금 유치기간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테라캐피탈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아이콘프로젝트의 관계자는 “계약조항상 구체적인 락업기간은 밝힐 수 없지만, 프로젝트가 자리 잡고 발전하는 기간을 고려해 중장기적 기간의 락업 기간을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박정연기자 drcherryberry@decenter.kr , 민서연 인턴기자 minsy@

박정연 기자
drcherryberry@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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