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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에디터스 레터]ICO 전수조사, 폭력과 복싱을 가르는 차이

9월 2주차


길거리에서 쳐다보는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고 주먹을 날리면 폭력배입니다.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학생이 말을 안듣는다고 뺨부터 걷어올리는 교사가 있다면 이역시 정당한 교육이라기 보다 폭력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주먹질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무조건 용납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복싱이 대표적입니다. 뛰어난 복서들은 12라운드 내내 주먹을 주고 받습니다. 행위 자체는 주먹질입니다. 그런데 매니 파퀴아오 같은 경우는 그 주먹을 잘 쓴다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필리핀의 국민영웅이 되어 국회의원까지 지냈습니다. 무하마드 알리는 지난 2016년 74세 나이로 사망할 당시 각계 각층의 저명인사가 애도를 표할 정도로 미국의 위대한 운동선수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대통령 후보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트위터로 “위대한 챔피언이자 진정한 남자”라며 애도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주먹질을 폭력과 스포츠로 가르는 차이는 룰입니다. 룰이 있고, 그 룰이 정당하며 원칙에 따라 제대로 운용된다면 사람들은 폭력이 아니라 스포츠로 받아들입니다. 그 룰이 있느냐 없느냐로 폭력배와 위대한 챔피언이 갈립니다.

이번주 금융감독원이 그동안 ICO를 진행한 기업들에 실태조사를 위한 질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디센터는 실태조사 질문지를 받아든 기업들의 긴장감과 사실상 이번 실태조사를 지휘하는 금융위원회의 반응을 전해드렸습니다. 기업들은 진의를 궁금해합니다. 과연 이번 실태조사가 말그대로 현실을 정확히 알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룰을 만들어주기 위한 행보인지, 아니면 자본시장법을 어겼는지 고백을 하라는 취지인지 말입니다. 일반적인 실태조사와 비교할 때 질문지의 내용이 워낙 세세해서 나오는 우려입니다. 정부의 속을 알 수 없으니 긍정적으로 보는 기업도 있고, 두려워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정감사에서 ‘ICO 금지 방침만 밝혀놓고 후속 감시 조치가 왜 없느냐’는 국회 질책이 나올 경우에 대비한 조치”라거나 “소탕작전을 펼치기 위한 사전 준비”라는 각종 해석이 나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말그대로 실태조사 목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도 실태조사에서 불법사항이 나오면 검찰고발을 하기도 한다”라며 형사 처벌 의뢰가 뒤따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도화를 위한 목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도 진의를 파악기 어렵기는 매한가지 입니다. 왜냐면 정부는 암호화폐 제도화를 언급하는 순간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 그동안 암호화폐와 관련한 언급을 극도로 꺼렸던 금융당국의 입장에서 설령 제도화를 위해 실태조사를 하더라도 이를 외부에 알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형사 처벌 가능성 역시 법규 위반이 명백하다면 처벌하겠다는 건 어찌보면 원론적인 답변입니다.

다만 정부가 기존 기업들을 처벌하는데 실태조사 결과를 활용한다면 이는 정부 신뢰와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태를 성실히 적어낸 곳은 처벌을 받고, 실태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설문지를 받지 않은 곳은 처벌을 받지 않는 불합리가 발생합니다. 이 경우 ‘룰 메이커’인 정부에 협조를 하려던 이들의 처벌 가능성이 높아지고 비협조를 하는 쪽이 처벌 가능성이 낮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블록체인 업계가 느끼는 정부 신뢰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고 멀리는 젊은이들이 규제가 아직 없는 신사업에 대한 도전 의지도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암호화폐 업계에는 파퀴아오나 알리는 꿈꾸는 복서들과 일단 바람을 타고 한탕 건져보자는 생각으로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잡배들이 섞여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현재는 룰이 없어 이 두 부류의 사업가들이 모두 폭력배로 치부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합니다. 이번 실태자료는 현재 ICO를 하는 기업들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비효율이 어디서 발생하는 지, 실제 절차와 사업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실태조사가 복서와 폭력배를 가를 수 있도록 정당한 룰을 만드는 기초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훗날 블록체인 분야에서 위대한 한국의 사업가가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흥록기자 rok@

김흥록 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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