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 비즈니스모델을 내세워 큰 주목을 받았던 블록체인 마일리지·포인트 통합 플랫폼 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관련 암호화폐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여러 곳에 흩어진 제휴 기업의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한데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암호화폐 업계의 미래 먹거리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기술 상용화 성공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제휴 기업 수와 이용 소비자가 기대했던 것만큼 늘지 않아 ‘용두사미’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14일 코인게코에 따르면 밀크(MLK)·어셈블프로토콜(ASM)·마일벌스(MVC) 등 블록체인 마일리지·포인트 통합 플랫폼 프로젝트 기반 암호화폐들은 한 달 전 최고가 대비 반토막 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밀크는 이날 오전 10시 기준 1,899원으로 지난달 5일 최고가(4,039원) 대비 53.2% 떨어졌다. 어셈블프로토콜과 마일벌스의 하락 폭은 더욱 크다. 어셈블프로토콜은 같은 기간 대비 80.4% 급락한 141원, 마일벌스는 86.9% 떨어진 83원에 각각 거래되고 있다. 불과 한 달 사이 암호화폐 가격이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의 손실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격 하락은 처음 본다” “가능성을 믿고 투자했는데 후회한다”는 원성이 터져나온다.
암호화폐 급락에 대해 업계에서는 ‘곪았던 것이 결국 터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휴 기업의 포인트나 마일리지를 통합하고 교환하는 ‘포인트·마일리지 통합 플랫폼’ 사업은 지난 2019년 사업이 본격화할 당시만 해도 블록체인 기술을 실생활에 접목한 서비스로 큰 기대를 받았다. 블록체인 솔루션 업체 키인사이드와 링플랫폼 등이 스마트콘트랙트(계약 조건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조건이 충족될 경우 자동으로 계약이 실행되도록 한 이더리움 기반의 블록체인 기술)를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신뢰할 수 있는 포인트·마일리지 거래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잇따라 출시 계획을 밝혔다. 이어 밀크와 어셈블·마일벌스 등 다양한 플랫폼이 출시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마일리지·포인트 통합 플랫폼은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더욱 고도화됐지만 플랫폼 참여 기업 수가 여전히 부족하고 대중들의 관심도 끌어당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블록체인 기반의 실생활 플랫폼 서비스가 출시되더라도 마일리지·포인트를 제공할 제휴 기업 수가 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재 업계 선두 주자인 밀크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를 낸 프로젝트를 찾기 어렵다. 밀크는 ‘트래블 얼라이언스(travel alliance)’라는 테마로 여행 업계 중심으로 파트너사를 확보하고 있다. 야놀자와 신세계면세점 등 대기업과 손을 잡으면서 올해 1분기 기준 가입자 수 40만 명을 돌파했다.
플랫폼에 참여하는 기업 수가 부족할 것이라는 지적은 서비스 출시 때부터 있었다. 마일리지와 포인트를 한곳에 모아 주는 서비스는 소비자의 편익을 높여주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 요인이다. 기업이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포인트나 마일리지는 국제회계법상 기업 부채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제공한 포인트에 상응하는 금액을 부채 충담금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소멸 기한이 지나면 부채는 사라진다. 하지만 고객들이 잠들어 있던 마일리지와 포인트를 찾아 사용하면 기업은 아낄 수 있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포인트 통합 플랫폼은 이런 문제를 의식해 참여 기업들이 상호 이용자 공유를 통해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마케팅 플랫폼’ 개념을 내세웠다. 하지만 기업들의 참여율 자체가 떨어지면서 기대했던 네트워크 효과를 얻지 못했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도 쉽지 않다.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는 세대와 성별에 따라 접근성이 크게 차이 난다. 밀크파트너스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밀크 이용자의 65%가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용자 가운데 남성 비율이 70%로 성비 불균형도 심하다. 밀크처럼 포인트 통합 플랫폼 서비스를 잘 사용하려면 암호화폐를 적시에 교환해 차익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암호화폐에 친숙하지 않은 사용자의 경우 진입 장벽이 높다는 얘기다.
업계는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통합 플랫폼을 활용하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국내외 업체 포인트를 모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참여가 부진한 상황을 감안한 ‘고육지책’인 셈이다.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어셈블프로토콜은 이달 4일 미국 최대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커스터디 거래 가능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해외 기관 및 헤지펀드의 투자 길을 열었다. 밀크도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야놀자를 등에 업고 국제 생태계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최근 야놀자가 나스닥 상장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미국 시장 진출에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밀크 관계자는 “현재 국내외 기업들과 제휴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실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 하나로서 책임감을 갖고 성장해나가겠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저비용으로 소비자의 편익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블록체인 포인트 통합 플랫폼은 여전히 매력적인 비즈니스모델”이라면서 “관건은 제휴 기업과 신규 고객의 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woo@decenter.kr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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