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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암호화폐에 새겨진 '주홍글씨'…갈 곳 잃은 기업들

'PG사 계약체결 난항·규제샌드박스 좌절' 등 블록체인 외면
업계 "제도 마련 시급…규제공백 장기화에 인력 엑소더스도"

  • 신은동 기자
  • 2019-03-14 13:47:17
블록체인·암호화폐에 새겨진 '주홍글씨'…갈 곳 잃은 기업들

# 엔젤 투자를 앞두고 여러 벤처사를 전전하고 있습니다만 상황이 녹록하지 않습니다. ‘암호화폐’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다들 손사래를 치시니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가야 하는지 회의감마저 듭니다.(2018년 설립한 암호화폐 컨설팅업체 대표)

# 주식시장에서 매매차익은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지만 암호화폐를 이용한 매매차익은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전문 트레이딩 기업으로서는 평가절하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이런 시장의 평가가 계속되다 보니 기업 자체의 성장이 불가능한 실정입니다.(암호화폐 트레이딩 전문 업체 대표)

암호화폐 시장 침체의 장기화와 더불어 계속되는 국내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저평가로 업계는 그야말로 침울한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블록체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힌 격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부 암호화폐 업계 종사자들은 암호화폐 규제 공백 장기화를 두고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또 정부가 블록체인은 육성하고 암호화폐는 부정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에 놓인 산업종사자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암호화폐는 안됩니다”…낙동강 오리알 신세
글로벌 사업을 진행하는 다수의 블록체인 업체들은 전자결제대행업체(PG)와의 계약 체결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PG사들이 금융당국의 눈치에 블록체인 기업의 계약 승인을 꺼리는 탓이다. 상반기 게임 디앱(DAPP) 출시를 앞둔 한 관계자는 “게임 내 아이템 구매 등에 결제 서비스를 붙이기 위해 PG사를 돌아다녔지만,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는 고려해봐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해당 서비스는 결국 암호화폐와 현금결제 두 가지 모두 포기한 채 데모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게임 서비스 론칭 후 상황을 보고 검토해 주겠다는 것에 희망을 가져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블록체인 기술 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암호화폐를 서비스하지 않는 기술기업도 PG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는 형국이다. 한 업체는 모회사가 암호화폐를 취급한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작은 소품을 판매하는데도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라 서비스를 해지했다”면서 “타 서비스였으면 이런 고초를 겪지 않았을 것”이라 설명했다.

해외 송금의 제재도 빈번하다. 은행들이 불법자금세탁 등을 이유로 블록체인 기업들의 해외 송금에도 제약을 건 탓이다. 싱가포르와 한국에 각각 재단을 설립한 한 업계 관계자는 “ICO 금지로 해외에 지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어 두 재단 간의 자금 송금이 필요한 시점이 많지만, 이마저도 막혀있다”고 토로했다.

“블록체인 육성 맞나?” 체감 없는 기술 육성 의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블록체인’만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주장도 의심하고 있다. 연간 지원금액을 늘리고, 블록체인 신규과제를 대폭 늘리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기술육성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KISA 공공과제 선정에 1차 탈락한 한 업체 대표는 “공공과제에서도 암호화폐가 들어가지 않는 프라이빗 블록체인만 선호하는 형국”이라며 “암호화폐를 허용한다 해도 포인트 형태의 제한적 사용만 도입해 제대로 된 기술증명되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른 국가기관의 과제 또한 기술증명보다는 연구 단계에 멈춰있는 것 같다”고 의견을 드러냈다.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유예해 준다는 ‘규제 샌드박스’에도 블록체인 기술은 외면됐다.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에 블록체인 송금을 내건 모인의 승인이 연거푸 불발된 탓이다. 기존 규제와는 관련 없이 사업 허가를 허용한다는 규제 샌드박스도 블록체인 분야에서만큼은 쉽사리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규제는 언제쯤?…목 빠지는 업계
명확한 규제 없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산업 종사자들은 명확한 규제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법적 정의도 모호한데다 규제의 불확실성으로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블록체인 기술 산업 세부 분류’ 을 내놓고 관련 기업을 10개 업종으로 분류지만, 이마저도 법·제도의 개선보다는 규제에 초점이 맞춰있다. ‘암호화폐 매매 중개업’으로 분류된 거래소들은 이를 근거로 벤처인증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벤처 인증 취소를 통보받은 한 거래소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산업에 기여하는 바는 철저히 배제된 채, 유흥업소와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됐다”고 토로했다. 암호화폐 거래소가 벤처기업에서 제외되면서 세제 등 관련 혜택이 사라졌다.

금융감독원의 ‘ICO 전수조사’ 또한 규제 수립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평가다. 정부가 블록체인 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실태점검과 질의를 마치고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은 내놓지 않았다. 암호화폐 산업을 제도권 안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다수의 관계자들은 “해외에서는 적극적으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반면 국내는 너무나 더딘 걸음을 보인다”며 “장기화 될 경우 인력이 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엑소더스’가 시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산업 성장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미 주홍글씨가 새겨진 블록체인 산업이 제대로 꽃을 피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자조했다.
/신은동기자 edshi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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