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신뢰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공공분야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서비스를 시도해 국민들의 신뢰를 구축하고 민간부문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지난 12일 서강대 연구실에서 만난 박수용(56·사진)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장(컴퓨터공학과 교수)은 블록체인을 ‘신뢰의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지금까지 제 3자 혹은 중개인이 증명해주던 일을 블록체인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블록체인이 가장 먼저 도입돼야 하는 분야는 공공분야라고 했다. 그는 “지금도 뭐 하나 하려고 하면 인감증명을 수 없이 떼야 한다”며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먼저 도입하면 일반 국민들이나 기업들이 편리함을 체험하게 되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학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블록체인 학과를 신설했다. 오는 3월 첫 수업이 시작되는 블록체인 전공수업은 총 5학기 과정으로 진행된다. 입학생들은 블록체인 이론과 암호화폐 개론 등 이론을 공부한 뒤, 2학기부터 블록체인 기반의 비즈니스 모델링, 블록체인 개발 등 실무 강의를 듣는다. 블록체인 미디어 디센터는 오는 24일 입학식을 앞두고 분주한 박 교수를 인터뷰 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블록체인을 사용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박 교수는 3년 안에 사람들이 블록체인을 활용한 응용 서비스들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 예측했다. 그는 “블록체인은 인터넷보다 더 빠르게 올 것”이라며 “5년이면 블록체인이 충분히 대중화할 수 있는데 이미 2년 가까이 블록체인이 사람들에게 다가섰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가 꾸준히 쓰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는 “암호화폐가 투기로 값이 요동치면 화폐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며 암호화폐 투기를 경계하면서도 “달러나 원화도 가격 변동성은 조금씩 있는 것처럼 암호화폐도 그 정도의 예상 가능한 가격 변동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국 실리콘밸리 출장을 자주 떠난다. 실리콘밸리에 대해 그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미국은 블록체인에만 투자하는 투자회사가 있을 정도로 블록체인 분야에 투자가 활발하고 기업 간 기술 교류도 활성화됐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아이디어를 발현하려 할 때 정부의 허가나 유권 해석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분위기는 창의 기반의 스타트업들의 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공공분야에서 블록체인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 투자자들의 자세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박 교수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고 서로 협의하는 동반자의 관계”라며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몇 년 안에 상장되느냐’와 같은 질문을 한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자 환경이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을 되려 위축시킨다는 평가다.
암호화폐 투기도 블록체인 스타트업에는 도움이 안 된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 거래소나 투기 이슈가 불거지면서 블록체인 자체의 기술 이슈가 묻힌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암호화폐는 규제하되 블록체인은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투트랙 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블록체인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가 인센티브로 주어지는 퍼블릭 체인 기술이 필요하다”며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을 확보하면 코인 보상이 필요 없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다”고 말했다. “해외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코인을 발행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을 구분해서 육성하면 앞서나간 기술들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의 ‘가상통화 태스크포스(TF)’가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를 일본이나 미국의 뉴욕주처럼 인가제로 운영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박 교수는 “정부가 블록체인 분야에 기준을 설정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정부가 거래소와 관련해 보안성이나 품질 등에 기준선을 마련해야 하지만 어떤 거래소는 ‘된다’, 어떤 거래소는 ‘안 된다’고 심사하게 되면 또 다른 이슈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해외 사례와 한국 사례를 비교해 그 기준선을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은행을 강하게 규제하지 않지만 문제가 생기면 철저히 책임을 묻는다”며 “그래서 은행들은 사기 방지나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해 보안성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가 초기코인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를 금지하며 나타난 역기능도 설명했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선 ICO에 성공해 초기에 자본을 끌어들이는 회사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ICO를 금지하니 기업들이 싱가포르나 스위스로 이동한다”며 “송도 같은 곳에 ICO를 허용하면 해외 ICO 기업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주장하며 “고용 창출도 기대할 수 있는 큰 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암호화폐와 관해 단어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라 부르고, 일반 시민들은 가상화폐, 정부는 가상통화라고 부르는 등 다양한 용어가 난무하다. 서강대에서는 암호화폐를 ‘디지털화폐’라고 표기했다. 이유를 묻자 박 교수는 “디지털 화폐가 보편적인 단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상은 리얼 월드(real world)와 디지털 월드(digital world)가 공존하고 있다”며 “지금까진 기업이나 개인이 만들어낸 화폐를 모두 암호화폐라고 했는데 미래엔 정부가 화폐를 만들어내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때 개인이 만드는 화폐와 정부가 만드는 화폐를 모두 암호화폐라고 하기보다는 디지털 화폐라고 이야기하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베네수엘라는 ‘페트로(petro)’, 두바이는 ‘엠캐쉬(emCash)’라는 암호화폐를 발행하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박 교수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기존 법정화폐(fiat money)와 디지털화폐가 같이 사용되는 현상이 이어지다가 한 화폐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디지털화폐의 승리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우편과 이메일의 경쟁,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의 경쟁도 그렇지 않았냐. 똑같다”고 말했다.
오는 24일 입학식이 열리는 블록체인 학과 대학원생에는 IT 분야, 금융 분야 등 직장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개그우먼 곽현화 씨도 입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 중 한 명이다. 박 교수는 “곽현화 씨가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블록체인을 공부할 수 있는 백그라운드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강대 지능형 블록체인 연구센터는 ‘블록체인 창업교육 아카데미’도 개설할 계획이다. 3개월·6개월 단위로 창업자들을 모집해 강의한다. 박 교수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 블록체인 산업에 새로운 창업자들이 많이 탄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윤주인턴기자 yjoo@
- 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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