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분기별 상장 유지 심사를 앞두고 이중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부실 코인 정리에 나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검증되지 않은 밈코인을 공격적으로 상장하고 있어서다. 특히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국내 1·2위 거래소 업비트와 빗썸의 유의·상폐 건수가 급증하는 동시에 신규 상장도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르면 이달부터 시작되는 상장 심사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대규모 상장폐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업비트 0개, 빗썸 1개에 불과했던 유의·상폐 종목이 4분기 들어 각각 5개, 7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두 거래소에 신규 상장된 가상자산은 57개로, 직전 분기 대비 5배 가량 급증했다. 특히 빗썸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간 36개에 달하는 신규 가상자산을 상장했다. 한 달에 12개 꼴로 신규 가상자산을 상장한 셈이다.
특히 신규 상장된 코인 중에는 닥사가 제시한 심사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밈코인이 여럿 있다. 닥사 상장 심사 요건에 따르면 거래소는 상장 심사 시 △발행주체의 신뢰성 △이용자 보호 장치 여부 △기술·보안 수준 △법규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발행·운영주체, 유통량 계획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밝히지 않는 밈코인은 상장 요건에 미달된다. 업비트에서는 봉크(BONK)·페페(PEPE)·캣인어독스월드(MEW), 빗썸에서는 고트세우스막시무스(GOAT)·무뎅(MOODENG)·썬도그(SUNDOG)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상장과 폐지가 동시에 급증하는 배경에는 규제의 불완전성이 자리잡고 있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는 지난해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에 맞춰 상장 심사 공동 가이드라인을 도입했지만, 분기별 상장 유지 심사에 6개월의 유예기간을 뒀다. 게다가 자율규제 성격이어서 아직 실질적 구속력은 없다. 현재 신규 상장은 각 거래소가 자체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어 DAXA의 심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코인도 상장이 가능한 상황인 셈이다.
이런 제도적 공백 속에서 거래소들은 이중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편으로는 닥사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부실 코인 정리에 나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래 수수료 수익성 확보를 위해 검증이 부족한 코인들을 신규 상장하고 있다. 업비트에서는 스팀달러(SBD)와 다드(DAD), 빗썸에서는 300피트 네트워크(FIT)와 템코(TEMCO) 등이 상폐됐지만, 같은 기간 검증이 미흡한 밈코인들이 대거 상장된 것이다.
이처럼 거래소의 자의적 운영이 계속되자 금융당국도 규제 강화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일 업무보고에서 글로벌 기준에 맞춘 가상자산 심사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폐지 제도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이다.
이에 투자자들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021년 특금법 시행 당시 업비트가 규제 리스크가 높은 가상자산 20여개를 한꺼번에 상폐한 경험이 있어서다. 한 투자자는 "상장 심사에 질적 요건이 포함돼 있지만 구체적인 기준이 공개되지 않아 투자한 코인의 상폐 가능성을 예측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닥사 관계자는 “신규 상장된 가상자산들도 모두 상장 유지 심사 대상"이라며 “거래소의 분기별 상장 유지 심사 의무와 심사 요건은 자율규제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닥사 차원에서의 제재는 불가능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하반기 발표한 ‘가상자산사업자 검사업무 운영계획’에 자율규제 준수 여부에 대한 점검을 명시하기도 한 만큼 가이드라인에 맞지 않는 가상자산을 거래 지원할 경우 당국의 검사·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율규제로 시작된 상장 심사가 실질적 강제력을 갖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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