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딜 가나 암호화폐(가상화폐) 이야기다. 그 덕분에 소위 전문가도 많이 생겼다. 참고로 필자는 암호화폐 전문가가 아니다.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의 8페이지짜리 논문을 한 번 읽어봤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암호화폐 전문가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까 해서다.
첫 번째 질문이다. 필자는 암호화폐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P2P 지급결제 거래에서 블록(block)의 진정성을 증명한 작업의 대가로 지급된 어떤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지금 블록체인과 상관없이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고판다. 전문가 대부분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지만, 정작 주객이 전도돼 암호화폐 자체가 블록체인의 유용성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왜 굳이 암호화폐를 블록체인과 연계해 발행하는 것일까?
두 번째 질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당초 비트코인을 P2P 지급결제 수단으로 고안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P2P 지급결제 거래에서만 발행되도록 설계됐다. 그것이 본질이다. 블록체인은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누구나 분산원장을 열어 암호화폐가 이용된 P2P 지급결제시장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암호화폐를 이용한 P2P 지급결제서비스가 얼마나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현재 암호화폐로 P2P 지급결제서비스가 얼마나 이용되고 있는 걸까?
세 번째 질문이다. 현재 알려진 암호화폐만 해도 1,600종에 이른다. 그런데 가상화폐를 이용한 P2P 지급결제가 보편화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이렇게 많은 종류의 암호화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이상하다. 암호화폐 전문가들조차도 암호화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시원스럽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그 존재를 알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채굴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암호화폐는 어떻게 채굴되고 있는 것일까? 혹시 누군가가 가상의 자금이체를 무한히 반복해 암호화폐를 채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네 번째 질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 ‘분산된 합의(distributed consensus)’에 의해 거래되기 때문에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신뢰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폭넓게 형성될수록 비트코인에 대한 신뢰도 확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산된 합의는 임의로 도출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비트코인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집단이 비트코인의 유용가치를 유지하거나 증대시킬 목적으로 가상의 P2P 지급결제를 무한히 일으키면 된다. 다른 암호화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신뢰할 만한가?
다섯 번째 질문이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P2P 지급결제서비스가 보편화하지 않는데도 수백 종의 암호화폐가 거래소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도 이상하다. 예를 들면 암호화폐 거래소 중 하나인 업비트만 해도 121개 종의 가상화폐가 거래된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P2P 지급결제가 보편화했다면 법정화폐로 암호화폐를 구매해 이용하려는 수요가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거래소는 일종의 환전소가 된다. 그러나 현재 암호화폐는 P2P 지급결제를 위한 수요보다는 암호화폐 자체에 대한 투자수요에 의해 거래소에서 매매되고 있다. 또 현재 암호화폐의 가치의 변동폭만 보더라도 P2P 지급결제를 위한 수요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암호화폐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암호화폐를 상품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는 화폐라고 주장한다. 화폐(money)는 아니지만 광의의 통화(currency)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특히 거래소 이해관계자들은 암호화폐가 화폐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투자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다른 부류의 전문가들은 암호화폐를 증권(securities)으로 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암호화폐의 가치가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매매하는 것을 고려하면 암호화폐를 화폐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암호화폐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fiat money)와 같은 지급결제 수단이 되려면 가치척도의 기준으로써 그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암호화폐는 상품이거나 증권 중 하나일 것이다.
현재 암호화폐 정체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는 것은 암호화폐가 지급결제 수단이 아닌 투자대상으로 전락하면서 발생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논의에서 거래소를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거래소가 왜 암호화폐를 이용한 P2P 지급결제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하지만, 정작 블록체인에 기반한 P2P 지급결제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도박장을 의미하는 하우스라고 평가절하한다.
물론 암호화폐가 투자대상이 된 것을 두고 거래소만을 탓할 수 없다. 암호화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졌고 실제 투자하는 사람도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암호화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잘 안다고 말하더라도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할 경우 잘 아는 게 아닐 수 있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과 관련 있고, 어떤 암호화폐가 존재하며, 그 암호화폐의 가치가 매일 변동하고 있다는 것이 투자자가 알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가장 많이 거래되고 있는 비트코인조차 진정한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정보를 찾기란 쉽지 않다. 오로지 오늘내일 가격이 오르락내리락 하더라도 언젠가는 올라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만연할 뿐이다.
암호화폐에 대해 잘 모르는 필자는 이 글에서 전문가들에게 다섯 가지 질문을 던졌다. 바보스런 질문 같더라도 이에 대해 시원한 답을 듣고 싶다. 특히 암호화폐가 이용된 P2P 지급결제 시장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공유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 사토시 나카모토가 의도했던 목적대로 암호화폐가 법정화폐를 대신해 지급결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야 암호화폐의 정체도 제대로 말할 수 있고 거래소가 난립하는 현상이 정상인지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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