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금융 생태계를 제패하고 싶은 것일까.
미국 최대 거래소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코인베이스는 지난달 링크드인(LinkedIn·글로벌 비즈니스 인맥사이트)의 인수·합병(M&A) 전문가 에밀리 최를 영입한 뒤로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마치 M&A를 통해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빠르게 성장한 소프트뱅크를 벤치마킹이라도 하듯 공격적인 기업 인수 행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코인베이스는 이미 연간 10억 달러를 웃도는 수익을 내면서 ‘암호화폐 업계의 실리콘밸리’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암호화폐 거래소 사업으로 IT공룡 기업과 같은 성과를 냈다는 의미다. 다만 코인베이스는 올들어 본격적인 사업 확장과 인재 확보에 나서면서 지금의 성과 정도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코인베이스의 시선은 거래소를 넘어 암호화폐 생태계의 플랫폼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에 닿아있다.
◆ 코인베이스 “암호화폐 금융 생태계 제패가 목표”=코인베이스는 지난 13일(현지시각) 회사의 첫 M&A 상대로 모바일용 이더리움 월렛 서비스와 메시징 앱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업체 ‘사이퍼 브라우저’를 지목했다. 사이퍼 브라우저는 코인베이스가 지난 2014년부터 자체 운영하고 있는 이더리움 월렛 스타트업 토시의 경쟁 상대로 언급되던 업체다. 경쟁 회사를 품음으로써 코인베이스는 이더리움 월렛과 메시징 앱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에 오르게 됐다.
사이퍼 브라우저 인수를 발효한지 불과 나흘 뒤인 지난 17일 코인베이스는 또 다른 업체의 인수 소식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비트코인 채굴 업체로 시작했다가 유료 메시징 서비스 업체로 탈바꿈한 언닷컴(Earn.com)이다. 정확한 인수 가격 및 조건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IT 전문매체 리코드(Recode)는 “코인베이스의 이번 인수가가 1억 달러를 소폭 웃돌 가능성이 있다”며 “코인베이스는 언닷컴의 플랫폼을 활용해 사업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 몸집만 불리는 것 아니다…드림팀 확보에 주력= 일각에서는 코인베이스가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기보다 능력있는 인재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코인베이스는 사이퍼 브라우저 인수 당시 이 제품을 홀로 개발한 피터 킴 개발자 겸 창업자를 토시의 엔지니어링 부문 수석 개발자로 영입했다. 그는 지난 2014년 이더리움 기반의 월렛 스타트업을 출시해 빛을 보지 못하던 코인베이스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꼽혔던 인물이다.
언닷컴의 최고기술책임자이자 블록체인 업계 내 최고 기술 전문가로 꼽히는 발라지 스리니바산은 토시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됐다. 결국 코인베이스는 기술 업체를 인수하는 동시에 인재를 확보하면서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기를 앞당기고 동시에 자체 월렛 서비스를 활성화할 기반을 다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재에 대한 코인베이스의 욕심은 인수·합병 뿐 아니라 개별 영입 현황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공교롭게도 코인베이스가 개별적으로 영입하는 인재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 분모가 있다. 모두 금융 업계 종사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17일(현지시각) 코인베이스는 알레시아 하스 전 오즈 매니지먼트(Oz Management·뉴욕 기반의 글로벌 자산 관리 업체) 최고 재무 책임자(CFO)를 영입했다. 그녀는 올해 3월 들어 코인베이스가 영입한 네 번째 인물로, 금융 산업을 궤뚫고 있는 베테랑으로 알려져 있다. 코인베이스는 앞서 에릭 스크로 전 뉴욕증권거래소(NYSE) 재무부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코인베이스의 잇단 금융 전문가 영입을 두고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는 “오는 7월 있을 G20 회담에 회사가 단단한 대안책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들을 통해 G20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 간 흔들리지 않고 암호화폐 생태계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거래소 내 금융 시스템을 발 빠르게 구축하려고 한다는 것이 테크크런치의 주장이다.
◆ 디지털 월렛·메시징 서비스...다음 타깃은?= 코인베이스가 M&A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큰 그림은 무엇일까. 코인베이스 측은 자사 블로그를 통해 “(우리)거래소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이른바 개방된 금융 시스템(Open Financial System)을 추구하기 위해 밟아나가야 할 가장 중요한 첫 단계”라며 “암호화폐 산업이 발달하려면 탄탄한 인프라 구축이 기본”이라고 전했다. 거래소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금융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인프라 스트럭처 기업이 되겠다는 지향을 밝힌 것이다.
코인베이스는 특히 개방된 금융시스템이라는 표현을 통해 신용이 보장된 특정인만 금융 혜택을 누리는 현재의 제도권 금융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실제 언닷컴을 인수할 당시 코인베이스 측은 “언닷컴 플랫폼을 통해 은행 계좌를 받을 수 없는 이들과 개발도상국 거주자에게 손쉬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세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찰스 호스킨슨 IOHK 최고경영자 등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60억명 가운데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인구는 30억명에 이른다. 코인베이스는 결국 세계 금융 시장의 절반을 제패하겠다는 큰 크림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시장은 이제 코인베이스가 다음 M&A 기업으로 어디를 지목할 지에 주목하고 있다. IT 전문매체 리코드는 “코인베이스는 지난 1월 헤지펀드의 암호화폐 자금을 관리해주는 암호화폐 관리 업체와 M&A를 하려고 했지만 엎어졌다”며 “이에 코인베이스는 관련된 자체 프로덕트 라인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코인베이스가 암호화폐를 사고, 팔고, 보내고, 관리하는 일련의 활동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언닷컴이나 사이퍼브라우저 모두 암호화폐를 메신저나 이메일로 손쉽게 전송하는 서비스다.
에밀리 최 코인베이스 M&A 전문가는 다음 인수 기업과 관련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많은 분야를 두루 어우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며 “전통 산업에 몸담은 인재 뿐 아니라 신사업에서의 경험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발언을 고려했을 때 언닷컴과 같은 무료 메시징 앱 또는 전 세계인이 거래비용을 걱정할 필요없이 암호화폐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춘 업체가 다음 인수 대상으로 발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김연지 인턴기자 yjk@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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