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증시가 한 달 새 23%나 하락하는 등 급격한 조정을 받고 있다. ‘부실한 펀더멘털은 변동성을 동반한다’는 증시 격언을 투자자들은 곱씹고 있다. 지난해 베트남 증시가 급등하며 불었던 베트남 펀드 열풍은 신흥국 불안에 최근 현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암호화폐 사기 사건의 영향으로 베트남 증시가 곤두박질치며 차갑게 식고 있다. 베트남 시장이 상승동력을 잃은 것 아니냐는 분석에 앞다퉈 현지에 진출했던 국내 증권사에도 위기 경고등이 켜졌고 미국 금리 인상 추세에 따라 당분간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베트남의 성장동력 자체가 꺾이지는 않았다며 성급한 펀드 환매는 자제하고 투자 기회를 엿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호찌민증권거래소(HOSE)의 VN지수는 28일(현지시간) 전 거래일 대비 3.34%(32.15포인트) 떨어진 931.75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연초 대비 VN지수의 하락 폭은 5.43%로 확대됐다. 신흥국 증시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은 최근 한 달 사이 낙폭이 가장 컸다. 지난 4월23일부터 VN지수는 급격한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48%나 상승한 VN지수는 올 들어서도 상승 추세를 이어갔으나 올해 4월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으며 한 달 동안 고점 대비 무려 23%가 떨어지며 패닉에 빠졌다.
베트남 증시 하락 요인으로는 급격한 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욕구도 있지만 내외부 변수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올 4월 중순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약 6억6,600만달러에 이르는 암호화폐 사기 사건이 터졌다. 이로 인해 개인투자자 상당수가 주식을 내다 팔아 유동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미국 국채금리 상승에 따른 신흥국 투자 매력이 줄어들면서 외국인 매도세가 투자 심리를 위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차헌도 한국투자증권 베트남법인 KIS베트남 본부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암호화폐 사기 사건 후폭풍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현지에서 보기에는 관련 영향은 미미하다”며 “미국 금리 인상 영향에 따른 외국인 매도세가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빈홈(Vinhomes)이라는 업체가 상장하자마자 시가총액 2위를 차지하자 외국계 펀드가 포트폴리오 조정 차원에서 기존 주식을 팔고 빈홈 주식을 사는 과정에 기존 주식이 하락하며 시장 분위기가 악화된 것도 주가 하락의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베트남 증시 고점 논란은 올해 초부터 제기됐지만 국내에서는 꾸준히 자금이 유입됐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1월 국내 베트남 펀드에는 4,418억원의 자금이 유입돼 지난해 연간 순유입 수준(4,163억원)을 달성했다. 이후 2~5월 4개월간 4,260억원의 자금이 추가로 들어오면서 29일 현재 지난해의 두 배에 육박하는 자금을 끌어모은 상황이다. 베트남 펀드 규모가 가장 큰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올 1월부터 4월까지 펀드를 소프트클로징(잠정 중단) 하기도 했지만 다른 운용사의 유사 펀드를 통한 투자가 이어졌다. 자금이 쏠린 투자는 결국 손실로 이어졌다. 연초 10%를 넘어서던 베트남 펀드 최근 3개월간 -13.3%로 돌아섰다. 한 달 수익률도 -8.17%다.
이와 관련해 베트남의 미래에 베팅하며 현지 진출에 나선 국내 금융투자 업계도 비상이 걸렸지만 성장성 자체가 꺾이지는 않았다며 현지화 전략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미래에셋대우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 비즈니스는 실물 투자 위주라서 증시가 단기적으로 급락해도 이와는 별개로 베트남 자체의 장기적 성장성에 초점 맞추고 계속 간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 역시 “베트남의 성장성은 여전하다”며 최근 증시 조정과 관계없이 앞으로도 진출을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NH투자증권은 올해 1월 독립현지법인인 NHSV(NH시큐리티 베트남)를 설립했고 지난달 베트남 증권위원회에서 베트남 증권업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리테일 사업뿐 아니라 투자은행(IB), 고유자산운용(PI), 자산운용 등의 업무를 모두 운영하면서 베트남 선두권 종합 증권사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달러 강세와 높은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주가가 폭락한데다 암호화폐 이슈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하고 한동안 투자를 자제할 것을 경고했다. 최보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 증시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지고 추가 성장동력이 부재해 연초 상승분을 모두 반납한 상태”라며 “장기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은 기대 가능하지만 수급 불균형 가능성이 존재해 VN지수 반등 폭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최근 외국인 매도가 컸던 까닭에 추가적인 미국 금리 인상의 영향은 미미한 만큼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차 본부장은 “시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후 조정이 한 번도 없이 상승했으나 급등에 따른 조정으로 하락률이 심하다”면서도 “전일 종가 기준으로 PER 17.4배까지 떨어진 상황으로 향후 긍정적인 전망을 가진 투자자라면 지금이 투자 적기라고 판단된다”고 평가했다.
/김광수·유주희·서지혜기자 bright@
- 김광수 기자
- br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