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암호화폐를 소개하고 블록체인 프로토콜을 만들자는 외침이 어느덧 잠잠해진 모습이다. 암호화폐 가격 폭락에 따른 시장축소에 따른 영향이다. 이더리움의 고질적 문제로 지목되던 속도와 확장성을 뛰어넘겠다며 등장하던 플랫폼 블록체인들의 아성 또한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가 플랫폼 블록체인들의 전쟁이었다면, 이제는 실제로 블록체인을 밖으로 들고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더리움 기반의 ‘디앱’들이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국내외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아톰릭스(Atomrigs)’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우현(사진) 서울 이더리움 밋업 공동조직자는 지금 세계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현주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이더리움과 관련해서는 국내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커뮤니티 멤버 중 하나이자 서울 이더리움 밋업의 공동조직자 중 한 명이다. 8일 그가 서울 홍릉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크립토 이코노미 혁신’을 주제로 개최한 20회째 서울 이더리움 밋업에는 장중혁 인포뱅크 대표, 서준용 람다256 팀장, 김종승 SK텔레콤 팀장, 김형중 고려대 교수 등 블록체인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학계를 망라한 블록체인 업계의 전문가들이 모이기도 했다. 디센터는 20회 서울 이더리움 밋업이 열리기 이틀 전인 지난 5일 정 공동조직자를 만나 이더리움 밋업의 시작과 그가 바라보는 블록체인 산업의 미래를 들어봤다.
정 공동조직자는 왜 여러 프로젝트 가운데 이더리움을 주목했을까. 그 역시 시작은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었다. 2013년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접한 후 정 공동조직자는 기존의 인터넷 기반 지불 수단이 지녔던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비싸며 절차도 복잡했던 단점을 비트코인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러다 자연스레 이더리움을 알게 된 그는 ‘스마트 계약’을 블록체인에 기록할 수 있으며 보다 평등한 네트워크를 꿈꾸는 이더리움에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정 공동조직자는 “나카모토 사토시는 각자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로 화폐를 채굴할 수 있는 평등한 P2P네트워크 시스템을 상상했지만 사실상 컴퓨터 파워의 경쟁이 됐다”며 “결국 돈을 많이 번 쪽에서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또 다른 금권주의가 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더리움 또한 지금까지는 비트코인과 같은 작업증명(PoW·Proof of Work)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지분 증명(PoS· Proof of Stake)으로 전환하는 작업은 현재지행형이다. 이더리움은 여기에 PoS방식의 합의 알고리즘 ‘캐스퍼’(Casper)를 통해 확장성을 넓히는 작업도 구현하고자 하고 있다. 사이드 체인 ‘플라즈마’(Plasma)를 만들어 데이터를 처리하고 꼭 필요한 데이터만을 메인체인에 올려 메인체인을 더 빠른 속도로 구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정 공동조직자는 이같은 이더리움의 로드맵이 달성한 이후에는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즉 디앱(DApp·Decentralized Application)의 시대가 될 것으로 봤다. 그는 “현재 이더리움에서 구동되는 디앱들은 크립토키티와 같이 단순한 게임류”라며 “앞으로 나올 디앱들은 좋은 토큰 이코노미를 짜고,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설정하는 등의 복합적인 구조를 짜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수학적 증명이 아닌 경험 축적을 통한 귀납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앱 시장이 무주공산이라면 과연 어떤 서비스가 킬러앱이 될 수 있을까. 그는 블록체인 시대에서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앱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는 “현재 나오고 있는 디앱들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블록체인이 아니어도 잘 되었을 디앱, 또 다른 하나는 블록체인으로만 되는 정말 새로운 형태의 디앱”이라며 “예를 들어 인터넷 시대의 이베이, 모바일 시대의 우버와 같은 블록체인 기반에서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디앱으로 탄생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금융, 물류 등 기존 시스템에 맞춰져 있는 산업을 블록체인으로 끌어들이는 디앱이 아닌, 전혀 새로운 종류의 디앱이 탄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 공동조직자는 이런 관점에서 여전히 국내 기업에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이 전략적으로도 디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정 공동조직자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이렇다 할만큼 완성도를 갖추고 출시한 디앱은 아직 없는 상태”라며 “장기적으로 대중적인 애플리케이션이 나오기 위해서는 이 삼년이 걸릴 것 ”라고 봤다. 그러면서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것들을 잘 만들어내는 한국이 애플리케이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더리움은 결코 외국 대기업이 아니다”라며 “기반기술이 약한 한국은 플랫폼에 집중하기보다는 잘하는 것,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전쟁에 뛰어든다면 승리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정공동조직자는 “보스코인, 아이콘과 같은 프로젝트를 육성해 국내 기반 기술을 탄탄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을 계속 생산하겠다고 모두가 나선다면 과거에서 발전하지 않는다”며 “과거 인터넷 시장을 보면 많은 웹 서버 소프트웨어들이 나왔지만 결국 한 두개만이 살아남았듯 유저가 많은 디앱들이 우리나라에서 나와 디앱의 중심지가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decenter.kr
-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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