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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신용도 평가할 업체가 브로커 역할...업계는 알고도 쉬쉬

[쟁글, 상장 지원 대가로 5,000만원 요구]

거래소-프로젝트 뿌리깊은 병폐

최근 상폐 갈등 불거지며 공론화

"현금이 상장 좌우" 공공연한 비밀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떠안아

수수료 기준 표준화 요구 목소리



암호화폐거래소와 프로젝트(코인 발행 업체) 간 ‘상장피’ 거래는 업계에는 만연한 고질적인 병폐다. 상장을 조건으로 돈이 오갈 경우 해당 프로젝트의 기술성이나 미래 성장성보다는 당장 현금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상장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이다. 이런 문제점이 있지만 업계 내부에서 상장피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적이 없다. 거래소와 프로젝트 간에 갑을 관계가 뿌리 깊게 형성돼 있다 보니 누가 먼저 총대를 메고 나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형 암호화폐거래소의 최고경영자(CEO)는 “대형 거래소에 상장하려면 프로젝트 팀들이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의 돈다발을 싸들고 가도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만큼 암호화폐 업계의 상장피 관행은 만연해 있다”면서 “그럼에도 프로젝트들이 내부 고발을 주저하는 것은 고발로 인한 이익보다 불합리해도 조용히 넘어가 상장을 계속 유지할 때 얻는 실익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경제 디센터가 27일 단독 입수한 ‘쟁글 리스팅 매니지먼트 서비스’ 계약서는 암호화폐 업계에 만연한 ‘모럴해저드’의 축소판과 같다. 코인의 신용도 평가를 하는 기업이 해당 프로젝트를 상대로 ‘상장 브로커’ 역할을 하고 업계의 뿌리 깊은 관행인 상장피를 친절히 설명하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계약서에는 이름이 명시돼 있지 않지만 암호화폐거래소들이 쟁글과 같은 상장 주선 기관 등을 통해 암암리에 검은돈을 요구해왔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업계의 관계자는 “계약서에 따라 돈을 지불하기 전에 상장을 희망하는 거래소에 대해 서로 조율을 한다”며 “중소 프로젝트들은 대형 거래소의 상장 담당 인력들에 줄을 대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상장피 관행은 거래소와 프로젝트 간의 갑을 관계에서 비롯된다. 주식시장과 달리 암호화폐 시장은 코인 상장 제도가 없다. 거래소마다 자체적으로 코인의 상장 및 상장폐지 기준을 정한다. 거래소가 프로젝트를 상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구조다. 대형 거래소에 코인을 상장하는 게 유리한 만큼 프로젝트들은 을의 신세로 전락한다. 상장피 요구가 불공정해도 외부에 알리기 쉽지 않다. 수많은 의혹에도 상장피 관행을 고발한 사례가 없던 이유다.



업계에서는 최근 대형 거래소와 상장폐지 프로젝트 간의 갈등을 계기로 상장피 문제를 공론화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거래소들이 상장을 대가로 받은 돈이 상장피가 아니라 컨설팅이나 시스템 유지 비용, 마케팅 비용 등이라면 그 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하고 표준화된 수수료를 받으라는 것이다. 미국처럼 암호화폐공개(ICO)한 투자금을 조달한 프로젝트들이 거래소에 상장비를 지불할 경우 자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글로벌 1위 암호화폐거래소 바이낸스는 상장피를 받지 않는다고 공언했다가 이 제도 탓에 거짓말이 들통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바이낸스에 상장한 블록스택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ICO 관련 서류에서 상장을 조건으로 거래소에 코인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ICO로 조달한 투자금을 거래소에 상장비로 지불할 경우 이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며 “미국처럼 제도를 통해 자금 사용 내역을 밝히면 업계 만연하던 상장피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비트·빗썸 등 대형 거래소들이 상장폐지 프로젝트들과 소송전에 휩싸인 것도 이런 작업이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최근 업비트로부터 상장폐지를 통보받은 피카는 “업비트가 상장 기념 에어드롭 이벤트 물량으로 요구한 PICA 500만 개는 사실상 상장피”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벤트에 사용된 물량은 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업비트가 코인을 팔아 수익을 실현하려 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업비트는 “어떠한 명목으로도 거래 지원에 대한 대가를 받지 않는다”며 “피카 프로젝트의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맞서고 있다. 빗썸으로부터 최근 상폐 통보를 받은 드래곤베인(DVC)도 빗썸의 결정에 대해 이달 24일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일각에서는 오는 9월 거래소 신고 마감을 앞두고 관계 당국이 거래소에 만연한 상장피 실태를 전면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국회 차원에서 상장피 이슈를 공론화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관계자는 “피카를 필두로 거래소에 상장피를 지불했다는 프로젝트들의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며 “이 정도 상황이면 금융 당국 등이 사태 파악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번에 문제가 된 쟁글은 현재 은행들이 실명 확인 계좌 발급 심사를 위한 코인 안전성 평가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상장피가 정당한 대가인지 아닌지는 소송으로 판단될 사안”이라며 “당국이 자본시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조사처럼 상장피를 들여다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의 상장피가 특금법 신고 수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결정된 바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도예리·노윤주·김정우 기자
yeri.d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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