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 규제를 담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1단계 법안)이 오는 7월 시행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규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산업 육성을 위한 법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카(MiCA)로 산업을 주도하려는 유럽과 비트코인(BTC)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한 미국을 따라잡으려면 국내 가상자산 업계도 경쟁력을 확보할 제도가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요원해 보이는 상황이다.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이 아직 불안정한 만큼 시장이 1단계 법안에 익숙해지는 것이 우선”이라며 “선거까지 겹쳐 가상자산 법안 논의가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1단계 법안에 적응하기도 전에 2단계 법안을 섣불리 도입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가상자산 발행·공시 등 산업 진흥책을 담은 2단계 법안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배경이다. 특히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전까지는 가상자산 법안을 논의할 여력도 없다.
정부도 가상자산 육성보다 규제에 집중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가상자산 감독·조사국을 출범, 가상자산 감독 업무에 착수했다. 불공정 거래 감시 체계를 구축해 1단계 법안 시행 전 규제 공백을 막겠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개정해 가상자산사업자 불수리 요건을 추가하고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요건 강화를 검토 중이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블록체인 진흥주간에선 정부가 행사 참여 기업의 ‘가상자산’ 관련 내용 언급을 금지하자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국회와 정부가 산업 육성을 외면하는 동안 국내 가상자산 업계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 사실상 5대 원화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 반면 오는 6월 시행 예정인 유럽의 가상자산법 미카는 산업 규제·육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프랑스와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이 블록체인 산업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이유다. 스위스 루가노는 지난해 말 BTC와 테더(USDT)를 활용한 세금 납부를 허용했다. 프랑스도 자국에서 영업 중인 가상자산 기업이 미카 가상자산사업자로 신속히 전환하도록 패스트 트랙 제도 도입을 고려 중이다.
미국도 지난 10일(현지시간) BTC 현물 ETF 거래를 승인, BTC를 하나의 투자 자산으로 인정했다. 이에 힘입어 BTC 현물 ETF 거래액은 거래 첫날부터 국내 코스피 일일 거래 대금과 비슷한 6조 원을 기록했다. 금융 당국의 그림자 규제로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마저 막힌 국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국내에선 당국이 명확한 규정을 마련해 산업 진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할 수 있는 것, 없는 것을 법으로 정해야 사업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다”며 “공시·상장 규정도 없어 이용자가 거래소의 활동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오훈 차앤권 변호사는 “1단계 법안은 고강도 규제만 담아 글로벌 흐름에 역행한다”며 “경쟁력 있는 혁신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단계 법안을 신속히 마련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기업 지원책까지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최재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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