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더(USDT) 등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급격한 성장이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을 야기해 한국 금융시장에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달러화의 지배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공언한 만큼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관련 법령 정비를 통해 방어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함께 나왔다.
글로벌 웹3 벤처캐피털 해시드의 싱크탱크인 해시드오픈리서치(HOR)는 24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과 법제화 제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HOR과 포필러스가 공동으로 발간했으며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등이 저자로 참여했다.
HOR은 보고서를 통해 USDT나 서클의 USD Coin(USDC) 등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자본 유출을 심화시키며 국내 금융 시스템과 원화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USDT는 2023년 말 국내 양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과 업비트에 순차 상장된 이후 현재 주간 거래량은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웃돌고 있다. 단일 가상자산으로는 비트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거래량이다.
HOR은 이같은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의 급격한 성장이 상당한 경제적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 달러화 스테이블코인 거래는 주로 해외 거래소 또는 개인 지갑으로 자금을 이전하기 위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자본의 ‘탈한국’ 현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업비트에서는 지난해 6월 USDT가 상장된 이후 전체 자본 유출의 60%가 USDT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하반기 약 21조 6000억 원 수준이던 가상자산의 해외 유출 규모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된 후인 지난해 상반기 약 74조 8000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HOR은 “자본 유출이 심화하면 가상자산 시장 내부 문제를 넘어 원화 경제권과 금융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추세가 지속할 경우 추후 가상자산과 실물 경제의 경계가 흐려지는 임계점 도달 시 원화의 사용성과 통제력 약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현재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개인 스마트컨트랙트와 연동된 비자나 마스터카드, 혹은 페이팔, 스트라이프, 쇼피파이 등의 온라인 결제 솔루션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으로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향후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결제 솔루션이 보편화되면 달러화 스테이블코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HOR은 이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HOR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핀테크나 결제, 자산관리 등에 USDT 등의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연동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한국 디지털 자산 시장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원화 기반 가상자산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김치 프리미엄 등 다양한 시장 왜곡 현상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국내 시장에 남아있을 유인을 확보하고 국내 자본의 불필요한 해외 유출을 방지하는 데 기여해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원화의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뒷받침하기 위한 법안 마련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과 같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HOR은 “현재 국내에는 자본시장법과 전자금융거래법 등의 관계 법령이 있지만 국내 발행인에게 공시의무를 강제하는 구조인 자본시장법은 해외 발행인이 존재할 수 있는 가상자산 시장과 맞지 않다”며 “중앙 전산 시스템을 전제하고 있는 전자금융거래법은 블록체인의 탈중앙적 특성을 고려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특성에 맞는 독자적인 규제체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용범 HOR 대표는 “우리나라도 원화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제도적, 정책적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신중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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