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확산되면서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원화 가치를 추종하는 선물 상품까지 등장했다. 한국 외환 규제를 우회해 원화 없이 원화 가치에 베팅할 수 있는 파생상품 거래가 가능해진 셈이다.
29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MEXC는 전날 오후 12시 40분 ‘원화-테더(USDT) 무기한 선물' 상품을 상장했다. 이 상품은 USDT로 거래되며 최대 100배 레버리지를 제공한다. MEXC는 코인마켓캡 기준 글로벌 중앙화 가상자산 거래소다. 금융정보분석원(FIU) 미신고 거래소로 분류되지만 여전히 국내 투자자 접근은 가능한 상태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금융 거래에 폭넓게 쓰이면서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각국 통화를 기초로 한 파생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자국통화의 해외 유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상품이 대체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해외 거래소에서 환율 헷지나 김치 프리미엄 해소 수단으로 해당 상품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MEXC는 현재 해당 상품의 국내 거래를 차단한 상태다. 국내 외국환 거래 규정과의 충돌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화를 기초로 한 100배 레버리지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원화의 투기화를 조장하는 셈”이라며 “국부 유출과 통화 안정성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흐름을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조재우 한성대 교수는 “한국 제도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이번 상품 출시는 이슈에 편승한 결과로 보인다"며 “다만 MEXC는 거래소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김형중 호서대 석좌교수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정부가 원화 유출을 통제하는 사이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서는 원화 차액결제선물환(NDF) 상품이 상위권을 차지하며 활황을 누리고 있다. 외국 금융시장은 원화 없이 원화로 돈을 버는데 국내 금융시장은 원화가 넘치지만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국내 거래소에만 상장하도록 제한하지 않는다면 원화 국제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