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규제 권고안이 공개됐다. 암호화폐 포함 가상자산을 취급하는 거래소와 사업자에게 기존 금융기관에 준하는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정부는 FATF 권고안을 국내 법령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와 유관 서비스제공자(VASP)들은 자체적인 대비에 나섰지만, 아직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아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권세민 엘립틱(Elliptic) 아태담당 대표는 “FATF 권고안을 넘어 글로벌하게 크립토 비즈니스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AML/CFT 데이터 솔루션 도입뿐만 아니라 전문인력, 문제 발생 시 조치 방향에 대한 내부 규정, 처리 절차까지 네 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립틱은 별도의 인텔리전스 팀을 구축해 불법 거래를 추적하기도 한다. 머신러닝이 반복되는 불특정 패턴의 거래내역을 찾는 역할이라면, 인텔리전스 팀은 하이드라 마켓(Hydra Market)과 같은 다크웹으로 흘러가는 자금을 직접 추적한다. 권 대표는 “전직 경찰, 범죄 수사관 출신 애널리스트가 인텔리전스 팀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다크웹 쪽에 미끼용 암호화폐를 조금씩 흘려보냄으로써 어떤 지갑으로 이동하는지, 어디서 거래되는지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글로벌 자산운용 기업 피델리티(Fidelity),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텐엑스 등이 엘립틱의 서비스를 이용 중”이라고 덧붙였다.
기존 AML/CFT 데이터 솔루션은 주로 법정화폐를 통한 범죄 이력을 추적하는 데 용이하다. 하지만 이를 암호화폐까지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게 권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법정화폐용 솔루션’과 ‘암호화폐용 솔루션’을 함께 사용하길 권한다. 법정화폐용 솔루션을 통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대상이 암호화폐 분야에서도 고위험군이라고 정의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은 마약이나 총기를 구매할 때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암호화폐나 골드바를 사용한다”며 “엘립틱은 2013년도부터 기록이 남지 않는 다크웹을 직접 추적하는 등 암호화폐에 최적화된 AML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립틱에 합류한 이후 그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 대표는 “암호화폐가 다크웹으로 흘러가 총기나 마약구매, 성매매 등에 사용되는 것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며 “거래소가 AML/CFT를 단순히 비용 차원에서, 혹은 FATF 권고안을 넘기기 위해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올바른 사업을 하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나아가 권 대표는 크립토를 활용해 글로벌한 비즈니스를 진행하고자 한다면 AML/CFT 솔루션과 함께 △전문인력 △내부규정 △보고절차까지 고루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거래소가 솔루션은 차치하고서라도 AML 이슈를 다루는 전문 인력도 구비하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전문 인력과 함께 거래소에서 AML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부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조치와 보고 절차도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대표는 거래소가 어떤 솔루션을 갖췄고, 어떤 내부 규정과 절차를 마련해뒀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소가 얼마나 AML 이슈에 반응하고 확인하는지 고객들이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이에 힘쓰는 거래소를 더 많이 이용하게 된다면 생태계 내에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권 대표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와 VASP가 FATF 권고안 틀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시야를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지역에선 아시아 블록체인 기업이 불투명하고 보안이 취약하다는 선입견이 있다”며 “아시아 기업들이 FATF 권고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발돋움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선 앞서 말한 네 가지 요소들을 기본으로 갖춰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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