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ETH) 언스테이킹(출금) 대기 물량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쌓이면서 출금 대기 시간이 보름 가까이 길어졌다.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던 대기 시간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최근 ETH 가격이 4년 만에 4000달러 선을 돌파하자 차익 실현 수요가 몰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8일 데이터 플랫폼 이더리움 밸리데이터 큐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20분 기준 출금을 기다리는 ETH은 86만 1758개로 집계됐다. 시가로 환산하면 약 37억 달러(약 5조 1245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전날에는 대기 물량이 89만 개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출금 대기 시간은 평균 14일 23시간으로 나타났다. 6월 중순까지만 해도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이다.
스테이킹은 이더리움과 같은 지분증명(PoS) 방식 블록체인에 가상화폐를 예치해 블록 제안·검증에 참여하고 그 대가로 보상을 받는 절차다. 반대로 언스테이킹은 이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이다. 최소 스테이킹 수량이 정해져 있기에 이를 채우기 어려운 개인 투자자들은 업비트·빗썸 등 거래소에서 이용자들의 자산을 모아 진행하는 대리 스테이킹 서비스를 활용해왔다. 보상률은 각 거래소별로 상이하다. 이날 업비트 기준 ETH 스테이킹 보상률은 연 2.72%, 빗썸의 고정형 스테이킹 상품은 연 7.32% 수준이다.
업계는 언스테이킹 물량 급증 배경으로 ETH 가격 급등을 지목하고 있다. 스테이킹 물량을 빼내 이익 실현에 나서려는 투자자들이 몰리며 대규모 출금 대기 물량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ETH는 최근 한 달 새 20% 가까이 상승하며 4년 만에 4000달러를 돌파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가격 급락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샘슨 모우 잰3 최고경영자(CEO)는 “예상대로 ETH 가격이 후퇴하고 있다”며 “언스테이킹 대기 물량이 풀리면 ETH 가격은 더욱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현상을 단순한 매도세가 아니라 스테이킹된 ETH를 재배치하는 과정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ETH 재무 전략(DAT·Digital Asset Treasury)을 채택한 기업들이 주목 받으며 투자자들이 스테이킹 된 ETH를 이들 기업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최고경영자(CEO)는 “벤처캐피털(VC)과 기관투자가들이 스테이킹된 ETH를 재무 전략 기업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스트래티지와 비트마인의 사례처럼 재무 전략 기업 주식은 대형 증권사 자문가들이 고객에게 비트코인(BTC)과 ETH에 대한 간접 투자 노출을 제공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스테이킹 플랫폼 에버스테이크도 “언스테이킹 급증은 투자심리 악화나 네트워크 불안정의 신호가 아니라 전략의 전환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ETH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스테이킹 기능 추가될 가능성에 대비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화폐 전문 매체 DL뉴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8월 초 새로운 지침을 통해 리퀴드 스테이킹 토큰(LST)이 증권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진입 가능성이 열렸다"며 “이번 출금 물결은 다가오는 ETH 스테이킹 ETF 출시에 대비한 준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퀴드 스테이킹은 가상화폐를 예치하고 대신 증명 토큰 LST를 발급받는 방식으로 유동성이 묶이지 않는 스테이킹 유형이다. SEC 지침 이후 LST가 증권 규제에서 벗어나면서 ETF에 스테이킹 기능이 포함될 가능성도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