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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CSI]④다단계 코인·토큰사기···“나는 이렇게 당했다”

알고도 당하고 모르면 더 빠져드는 다단계 코인 사기

지인 권유로 접근, 잠적하기 전까지 원활한 소통도 특징

뚜렷한 책임 실체 없어 피해자 발 구르기만

/셔터스톡

# 코인·토큰 사기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중장년층이 주요 타깃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기꾼들은 금전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며 건전한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코인·토큰 사기로 발생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실제 피해자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단체와 인물은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의 설정임을 밝힙니다.


떼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노후자금이니까, 따박따박 이자가 나오는 투자 상품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뿐이었는데…. 이것이 욕심이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건지. 2년 전이었다.

코인사기, 그 시작은 도별 모임이었다
일요일, 평소 같았으면 ‘도별 사업가 모임’에 참석했을 시간이다. 나는 요 몇 년간 지역 모임에 문지방 닳듯 넘나들었다. 처음에는 사업에 도움을 얻을까 하는 생각으로 찾아갔었다. 도별 모임에는 지역에서 힘 좀 꽤나 쓴다는 사람이 여럿 있었고, 실제로 사업에 필요한 인맥을 얻기도 했다.

근래에는 사업보단 교육을 받으러 모임에 갔다. 아무래도 복잡한 블록체인 코인에 투자를 하려거든 교육부터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환갑이 넘어서 그런지 의자에 오래 앉아있기가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모임에 나가면 마음 맞는 사람도 만날 수 있고 해서 빠짐없이 참석했다. 모임은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됐다.

교육은 주로 김 씨가 맡았다. 김 씨와 알고 지낸 지는 어언 3년이 다 되어 간다. 김 씨는 중국 교포다. 새로운 사업기회에 밝은 그는 도별 모임에서 종종 신기술에 관한 정보를 전해주곤 했다. 재작년 S코인을 알게 된 것도 김 씨 덕분이다. S코인은 혁신적인 금융기법을 적용한 신개념 코인이라고 했다.

S코인은 본사가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해외 블록체인 사업이었다. 재작년 말 김 씨를 비롯해 도별 모임 회원 십여 명 정도가 캄보디아 본사로 교육을 받으러 다녀왔다. 교육은 어느 호텔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 코인을 살 때 사용해야 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 같은 걸 알려줬다. 은행에서 입·출금을 하듯 쉽게 사용하면 된다고 했다.

캄보디아 출장은 3박 4일이었다. 그중 하루 정도가 교육이었다. 나머지 시간엔 관광을 다녔다. S코인 회사가 운영하는 카지노에 다녀왔고, 부동산을 견학했다. 우리는 항공편만 사비로 냈고 5성급 호텔 숙박비나 식비는 모두 S코인 측에서 제공해줬다.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이라면 적어도 사기는 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S코인 사업설명회 /캡처=유튜브

S코인, 사기로 밝혀지다
“아니, 성님 지금 그거 봤단가? S코인이 다단계랴 글쎄!”

평소와 다를 게 없어야 할 그날, 내 일상이 무너졌다. 다급히 울리는 전화를 받았더니 수화기 너머로 후배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별 모임에서 알게 돼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된 지역 사업가였다.

“뭔 소리여, 시방. 뭐가 어쩌고 어째?”

“아니 김 씨 성님이 알려준 S코인이 사기라고! 지금 톡방 빨리 봐봐야!”

에이, 잘못 알았겠지. 그럴 리가 없는데. S코인이 어떤 코인인데. 내가 직접 캄보디아까지 비행기 타고 날아가 두 눈으로 보고 왔던 코인 아니던가? 떨리는 손으로 모임 톡방에 들어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들 김 씨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S코인을 소개해준 김 씨도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아니, 정말로요. 저도 몰랐다니까요. 제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지금 이렇게 남아있겠습니까? 저도 피해자입니다. 피해자라고요!”

김 씨가 해명에 나섰다. 거짓말 같진 않았다. 그렇게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며칠이 지났다. 얼마 뒤 인터넷에 S코인이 MBI라는 다단계 사기를 본따서 만든 ‘짝퉁 사기’라는 글이 올라왔다. 뉴스를 보니 MBI는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사기인데, S코인도 비슷한 수법을 따랐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일로 도별 모임이 와해되진 않았다. 투자를 막 시작한 단계여서 피해 금액이 적기도 했고, 같은 지역에서 밀어주고 당겨주던 사이였기에 꽤 두터운 신뢰가 쌓인 터였다. 모임 회원들끼리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대포 한 잔 걸치며 다음엔 잘해보자고, 훌훌 털어냈다. 그 때 마음을 돌려 먹었어야 했는데.

두 번째 코인에 투자하다
도별 모임이 완전히 문을 닫게 된 건 두 번째 다단계 사기였던 P토큰의 전모가 밝혀지면서였다. S코인 사건이 지나고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이번엔 정말 괜찮은 코인이 있다”며 접근했다. 그게 바로 P토큰이었다.

P토큰을 소개해준 건 이 씨였다. 이 씨는 재작년 캄보디아 교육에서 만났던 사람으로, 자기도 마찬가지로 S코인 때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그런데 P토큰은 다르단다. P토큰은 진일보한 코인이어서, 다른 암호화폐와는 출생부터 다르다고 말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A전자 출신 개발자들이 만든 P토큰에는 최신 기술인 블록체인이 적용됐고, 인공지능을 사용해 자동으로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를 매매해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암호화폐가 오르면 자연스럽게 차익을 먹는 구조라니까요 형님?”

이 씨가 자신 있게 말했다.

가장 좋은 점은 매달 수익금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일단 초기 투자금을 넣어두면 28일 동안 잠겨 있는데 그 뒤로 이자가 딱딱 지급됐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이렇게 좋은 코인이라면 남들도 다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좋은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50만원을 넣어봤다. 한 달 뒤 10% 이자인 5만원이 내 통장에 지급됐다. 기분이 묘했다. 28일이 지난 터라 언제든 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회수하지 않고 50만원을 더 넣어봤다. 이번에는 이자가 10만원이 들어왔다. 매달 이자가 들어올수록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50만원부터 시작했던 원금은 200만원, 500만원, 3천만원 그리고 1억까지 불어났다.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자를 늘리기 위해 사무실 운용자금을 원금으로 넣을 때도 있었다. S코인과 달리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면 언제든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에 안도하고 있었다. 게다가 P토큰은 추천인을 데려오면 하루치 수익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는 ‘추천인 제도’를 운영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어서 자연스레, 이 씨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도별 모임 사람들에게도 P토큰을 권유하게 됐다.

/셔터스톡

모래성처럼 무너진 다단계 사기, 책임은 누구의 몫?
다단계 사기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다. 평화로운 어느 날 청천벽력처럼 결말이 다가온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P토큰의 원화 출금이 갑작스레 정지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출금이 가능했었는데 하루아침에 막혀버린 것이다! 손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카톡방의 P토큰 홍보팀은 플랫폼 업그레이드로 인해 출금이 지연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도별 모임에서는 “한국 정부가 암호화폐에 부정적이어서 중국으로 프로젝트가 옮기는 과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때부터 인터넷 뉴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P토큰을 검색하면 ‘스캠 의혹’이라는 단어가 따라 붙었다. 한국의 A전자 출신이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는 말도 거짓이었고, 중국의 사기 집단이 벌인 다단계 사기였다. 출금이 막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P토큰 주요 간부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큰돈을 잃은 도별 모임 회원은 피해자 단톡방에 가입해 변호사를 구해 소송단을 꾸리겠다고 했다. P토큰을 소개해줬던 이 씨도 역시 피해자였다. S코인을 소개해줬던 김 씨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돌이켜 보면 S코인과 P토큰은 유사한 면이 많았다. 해외에 본사를 뒀다는 점, 추천인을 데려오면 보상을 더 준다는 점, 실제로 제품을 사용해보기가 어렵다는 점 등…. 돌이켜 보면 이상한 것들 투성이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단계 사기는 마치 개미지옥 같아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은 곳으로 끌려 들어갔다.

최근에는 그저 막막한 심정뿐이다. 한국에서만 피해자가 300만 명이 넘고, 중국 등 총 피해 규모만 29억달러(3.5조원)가 넘는다고 하니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다. 후회가 밀려온다. 투자하기 전에 조금 더 알아볼 걸, 의심해 볼 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게 이런 심정일까?
/조재석기자 cho@decenter.kr

조재석 기자
ch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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