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에 대해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디크립트는 12일 “엘살바도르를 인간의 자유나 금융 포용력을 향상 시킨 탁월한 예시로 보기에는 어렵다”며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암호화폐 업계가 추앙할만한 영웅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먼저 ‘비민주적인’ 국가 원수가 암호화폐를 받아들이는 것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9년 ‘조직범죄 및 부정부패 척결’을 약속하며 37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부켈레는 이후 줄곧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왔다. 1992년 내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의회에 군대를 투입한 것도 그였다. 엘살바도르 보안군이 시민 수백명을 임의 구금한 사실에 대해 휴먼라이츠워치는 “억류자 수백 명이 '과밀하고 건강을 위협하는 비위생적인 상태'로 억류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부켈레 행정부는 이동금지령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을 감금했다. 대법원이 이를 불법감금으로 규정하고 인권을 존중하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부켈레 대통령은 불복했다. 격리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엘살바도르 사법당국이 80세 노인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사실도 적발됐다. 사법당국은 "검역을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더 엄하게 대하라"는 부켈레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이유로 이코노미스트가 발간한 2020 민주주의 지수 보고서는 2019년 2월 부클레 대통령 당선 이후 엘살바도르의 민주주의지수가 중남미국가 중 가장 큰 폭으로 추락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코노미스트는 엘살바도르를 "하이브리드 정권"으로 분류했다. 완전한 권위주의 국가보다 한 단계 위, ‘결함 있는 민주주의’ 보다 한 단계 아래 위치다. 보고서는 엘살바도르의 정치 문화에 10점 만점에 3.75점, 정부 기능에 4.29점으로 역시 낮은 점수를 부여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퀀텀 이코노믹스(Quantum Economics)의 제이슨 데인(Jason Deane) 비트코인 분석가는 디크립트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국가 통화로 채택하는 '위장한 권위주의' 정부를 지지해선 안 된다는 일부 언론의 논평이 있는데, 이는 비트코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했다. 데인은 “비트코인은 정치와는 무관한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대개 인도주의적인 비트코인주의자들이 이번 엘살바도르의 선택을 개인과 국가의 금전적 자유를 향한 여정상 진보로 망설임 없이 축하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일부는 부클레의 정치적 행보와 비트코인 정책을 분리하기도 한다. 인권재단의 알렉스 글래드스타인 수석전략책임자는 “나 역시 판사들을 해임하고 의회에 압력을 가하는 지도자(부켈레 대통령)를 추앙하지 말라고 주장해왔다”며 “그러나 비트코인 채택건은 엘살바도르인의 금융적 자유를 증진하고, 그들을 세계와 연결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권을 위한 대규모 승리”라고 주장했다.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화폐 채택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있다. 엘살바도르 중앙은행의 2020년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엘살바도르의 수출액은 2019년 대비 15.4% 줄었다. 공공부채는 27억 7,300만달러로 2017~2019년 부채 합계인 25억 5,500만 달러보다 많았다. 이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엘살바도르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2019년 70%에서 2022년 90%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하며 올해 초 엘살바도르의 신용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미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조지 셀긴 선임연구원은 “2001년 엘살바도르가 달러화로 한 일을 부클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으로 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2000년 무렵 초인플레이션으로 국가 통화인 콜론이 붕괴되기 시작하자, 엘살바도르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달러를 법정화폐로 선언하고 콜론을 단계적으로 폐지한 바 있다. 셀긴은 "이미 콜론을 폐기한 엘살바도르로서는 국민들이 법적으로 동등한 두 가지 대체 통화 옵션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도 크게 잃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셀긴은 “비트코인 채택은 바이든 행정부의 암호화폐 제재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될 수 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달러 체제를 유지하며 비트코인을 도입하는 이유에 대해 “비트코인에 몰린 국제적 관심을 이용해 달러를 벌려는 시도”라는 추측도 나온다.
/양오늘 today@decenter.kr
- 양오늘 기자
- today@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