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후에 상장폐지 할 종목이면 애초에 왜 상장을 시켰나요”
업비트가 11일 원화마켓 상장폐지를 발표한 종목 상당수가 불과 지난해 말 상장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투자자들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업비트 측에서 통보한 상장폐지 사유는 내부 기준 미달. ‘내부 기준’을 통과해 상장됐던 암호화폐가 몇 개월만에 그 기준을 미달했기 때문에 상장폐지 하겠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장폐지 결정에 투자자들 사에에선 애초에 상장 절차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의 거래소 실사에 며칠 앞서 대규모 상장폐지가 이뤄졌다는 사실은 의혹을 더한다.
대형 거래소 상장 여부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투자 종목을 고를 때 참고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대형 거래소의 상장 심사 통과가 해당 종목의 안전성을 증명한다고 믿어서다. 거래소 역시 자신들의 상장 심사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고 투명한지 앞다퉈 홍보한다. 자체적인 상장 심사 위원회를 둬 꼼꼼한 검토와 의결을 거치고, 상장 심사 시 어떤 요소를 검토하는 지 내부 기준 역시 공개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암호화폐 ‘상장피(fee)’의 존재를 아는 투자자는 드물다. 거래소가 프로젝트를 상대로 ‘상장 장사’를 해온 건 업계 내부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블록체인 프로젝트 관계자들도 “거래소가 상장을 대가로 많게는 수 억 원의 상장피를 요구했다”고 증언한다. 거래소 입장에선 새로운 암호화폐를 최대한 상장하는 것이 상장피도 벌고 상장 후 거래 수수료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팀 역량 및 사업이 부실"하다거나 “기술 역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장폐지를 하는 암호화폐가 상장될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 거래소의 상장 심사 기준을 믿고 암호화폐를 매수한 투자자들은 발등을 찍힌 셈이다. 전문가들은 거래소가 상장피의 존재를 알리지 않아 투자자가 손해를 본 부분에 대해선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상장피의 존재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상장피는 보통 마케팅이나 개발 비용 명목으로 우회 지급된다. 거래소가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상장피를 받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업비트 측은 마케팅 목적으로 암호화폐를 받긴 하지만 프로젝트가 남은 물량을 돌려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돌려주고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거래소의 무책임한 상장과 상장폐지의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견뎌야 하는 몫이 된다. 상장부터 상장폐지까지의 과정에서 거래소가 보는 손해는 없다. 오히려 상장폐지를 예고한 후 정리매매 기간 이뤄지는 매도와 출금 과정에서 더 많은 수수료 수익을 내기도 한다. 업비트가 페이코인(PCI) 등 암호화폐 5종의 상장폐지를 발표한 다음날부터 5일 동안 벌어 들인 거래 수수료만 1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암호화폐 상장 및 상장폐지에 관한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권한을 독점하고 시장을 교란시키는 거래소의 횡포를 막을 법률 정비가 시급하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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