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극복해야 한다. 규제를 회피하든지, 규제에 순응하든지, 규제를 뛰어넘든지 해야 살아남는다. 규제와 충돌하는 혁신은 기회를 잃고 전설로만 남게 된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혁신적인 자금조달 수단으로 2017년 붐이 일었던 ICO는 아직까지도 규제 사각지대이다. 정부가 정책으로 ICO를 금지했지만, ICO 자체를 규제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없다. 다만,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의 침체와 ICO 프로젝트 성과의 미미함으로 인하여 이제 더 이상 ICO를 혁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의 혁신은 디파이와 NFT이다. 디파이는 기존 금융권의 모든 서비스를 블록체인과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중앙기관 개입 없이 자동으로 수행하는 혁신을 이루고 있다. NFT는 디지털 자산뿐 아니라 실물 자산에 대한 소유권 증빙과 거래 투명성을 블록체인으로 구현하는 혁신을 이루어냈다.
신용이 없어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사람도, 보유자금으로는 1~2%의 은행 예치 이자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자산 보유자도,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높은 레버리지 투자를 감행하는 투자자에게도 디파이는 기존 금융권이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를 국적, 직업, 신용, 성별, 나이, 소득수준에 차별 없이 투명하게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은행과 비교해 100배가 넘는 이자율과 100분의 1도 안되는 수수료를 제시하는데 가입 서류나 신원 노출도 없이 클릭 몇 번으로 탈중앙화된 금융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초등학생이 만든 디지털 아트나 은퇴 후 취미로 사진 촬영을 하는 할아버지가 찍은 사진이나, 무명 작곡가의 음원도, 한류스타의 사진이 담긴 한정판 앨범도, 스포츠스타의 멋진 결승골 장면이 담긴 영상물도, 앤디 워홀의 마지막 작품에 대한 분할 소유 지분도 소유자라면 누구나 NFT화 해 소유권의 전부 또는 분할된 일부 형태 또는 복제된 한정판 수량 형태로 NFT 마켓에 업로드해 판매 및 거래할 수 있다. NFT의 업로드 및 거래 내역은 블록체인상에 투명하게 기록되고 공개되고, 거래 내역 위, 변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혁신의 순기능을 사악하게 이용하는 자들은 항상 존재하고 그로 인한 피해자가 생긴다. 공개된 디파이 소스코드를 복제해 사이트명과 프론트 디자인만 변경하고, 그럴듯하게 새로운 디파이 플랫폼을 런칭해 수백억원의 자금을 유치한 후 며칠 만에 사이트를 폐쇄하고 먹튀를 하는 프로젝트들이 디파이 업계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몇 만 %에 해당하는 리워드 이자 수익율을 제시했지만, 원본 토큰의 자산가치가 리워드 보상 속도보다 더 빠르게 하락해 결국 아무런 이익이 없는 디파이 상품이 흔하다. 스마트컨트랙트 오딧을 받았음에도 플래쉬론 해킹을 당해 예치된 자금이 몇 초 만에 전부 없어지는 경우도 있고, 토큰 알고리즘 설계의 허점으로 몇만 원에 거래되던 토큰이 단 하루 만에 0원이 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NFT 시장에서는 타인의 작품을 자기 것처럼 무분별하게 NFT로 올려서 판매하는 신원불상의 판매자가 넘쳐나고, 저작권이나 초상권 개념 없이 유명 작가나 유명인의 초상을 무단으로 이용한 디지털 작품을 제작하여 NFT로 판매하는 자들도 많다.
세상에 유일무이한 대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판매를 해 놓고, 동일한 디지털 복제품을 다른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작품들을 복제하여 수백개 씩 판매 목적으로 NFT 마켓에 올려 다른 좋은 작품들을 찾기 힘들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 때 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등장한다. 피해자 보호와 건전한 시장질서를 위하여. 디파이와 NFT 서비스를 하기 위해 엄청난 시설, 장비, 자본금, 경력 등 요건을 요구하고, 피해자 발생 방지를 위한 복잡한 확인 절차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요건과 절차를 갖추지 못하면 서비스를 금지하고 위반하면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디파이와 NFT 서비스 운영의 본질적 특성 상 혁신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규제가 요구하는 요건과 절차를 갖추어야 할 의무를 부담할 수 있는 법적 주체의 모호함이다.
FATF는 디파이와 NFT도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지원에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 규제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 정부는 특금법개정안 시행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 규제를 시작하였는데 디파이와 NFT에 대하여서는 규제 대상으로 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 아직은 유보적인 입장이다.
규제는 각 나라별로 다르게 시행된다. 규제는 명분을 등에 업고 등장한다. 하지만 어떤 규제도 정상적인 자유민주국가라면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한계를 준수해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결국 정부가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냐는 관점에서 규제의 양상이 크게 달라진다.
국민을 정부가 보살펴야 할 어리고 순한 양 같은 존재나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우매한 백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부는 정부가 정해준 대로만 하고 나머지는 할 수 없다는 포지티브 규제로 국민의 자유와 기술의 혁신을 옥죌 것이다.
반면 국민을 자율적인 선택과 선택에 따른 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 주권자로서 존중을 하는 정부에서는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필요 최소한도로 규제하고 금지된 행위 외에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네거티브 규제로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기술의 혁신을 통한 성장을 촉진 시킬 것이다.
디파이 커뮤니티에서는 DYOR이라는 용어가 디파이 이용자의 불문율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Do Your Own Research. 즉 스스로 공부해서 판단한 후 투자하고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다.
디파이에서 사기 프로젝트와 해킹, 먹튀 사고가 수시로 발생하고 피해자와 피해 금액도 적지 않은 규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파이의 본질적인 혁신을 무너뜨릴 수 있는 형태의 규제를 수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규제는 국민의 자유를 한계로 혁신을 대해야 한다. 규제는 혁신의 숨통을 죄거나, 혁신과 함께 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혁신의 숨통을 죄면서 혁신을 통한 가치를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규제는 없다. /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권단 변호사
- 디케이엘파트너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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