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이 가상자산의 개인지갑 출금을 전면 금지하기로 하면서 투자자와 암호화폐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본인 소유임를 증명한 개인 지갑에 대해서도 출금을 막으면서 투자자들이 다양한 가상자산에 투자할 기회를 일방적으로 제약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빗썸의 이번 결정 배경에 제휴 은행인 NH농협은행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 24일 홈페이지에 “가상자산 출금주소 사전 등록 정책이 변경됐다”며 개인지갑 등록 불가 방침을 알렸다. 빗썸은 지난 19일 개인지갑의 경우 대면 심사를 통해 등록할 수 있다고 공지했는데 일주일도 안 돼 이를 뒤집은 것이다. 빗썸은 본인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개인지갑도 등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빗썸 고객들은 자신이 보유한 가상자산을 타 거래소 실명 계좌 외에는 개인지갑으로 출금할 수 없게 됐다.
문제는 빗썸이 투자자들의 가상자산 선택권을 침해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빗썸 관계자는 “내부 논의 통해 모든 개인 지갑으로의 출금을 금지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투자자들은 없다. 우선 개인지갑의 출금이 막히면 빗썸 고객들의 서비스 선택권이 크게 제약된다. 카카오톡에 탑재된 가상자산 지갑인 클립(Klip)과의 연동도 불가능해진다. 카카오톡으로 쉽게 본인 소유 지갑임을 증명할 수 있지만 빗썸에선 지갑 등록자체가 안되기 때문이다.
델리오와 샌드뱅크, 업파이와 같은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도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이들 서비스는 개인 정보를 입력하고, 회원가입을 거쳐 발급된 개인지갑을 통해 이용할 수 있는데 빗썸에 등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이키핀처럼 통신사 인증으로 DID가 발급된 개인지갑도 출금이 막힌다.
개인지갑 전면 출금 조치는 빗썸에게도 불리하다. 빗썸 고객이 다른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타 거래소로 가상자산을 보낸 뒤 다시 해당 사업자의 개인 지갑으로 옮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빗썸 거래소 안에서만 암호화폐를 거래하고, 빗썸이 제공하는 서비스만 이용해야 한다. 다른 거래소들이 본인 소유를 증명한 개인 지갑으로 출금을 허용해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과 대비된다. 빗썸의 상대적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는 지점이다.
이 때문에 빗썸이 이번 결정을 내린 배경에 제휴은행인 NH농협은행의 요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오는 3월25일 트래블룰 시행을 앞두고 자금세탁 논란을 우려한 NH농협은행이 빗썸을 강하게 압박해 이번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빗썸과 NH농협은행 모두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특금법에서 규정한 트래블룰 제도를 뛰어넘는 월권을 행사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더욱이 제휴은행이 같은 코인원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외부지갑 등록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형평성 논란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코인원은 트래블룰이 시행되면 신원 확인이 어려운 메타마스크 등 개인지갑으로는 암호화폐를 출금할 수 없게 되자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 이름 등으로 본인 소유를 증명할 수 있는 외부지갑 등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코인원 관계자는 “농협과 사전에 협의하고 외부지갑 등록 제도를 시행했다”며 “정책이 변경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이 두 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기준과 관련해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NH농협은행 관계자는 코인원과 빗썸에 각기 다른 자금세탁방지 조항을 요구했는지 묻자 "트래블룰 준수관련 사항은 양 거래소 동일하며 상세 계약조건은 확인이 불가하다"고 말했다.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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