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법인 계좌 허용이 가시화되면서 거래소-은행 제휴 구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인터넷은행 케이뱅크와 제휴를 맺고 있는 업비트가 법인 거래에 보다 용이한 시중은행과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비트가 하나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맺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업비트가 법인 가상자산 계좌 허용에 대비해 지난해부터 하나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위한 물밑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 허용은 현재 정책 검토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업비트가 지난해 10월 케이뱅크와 실명계좌 재계약을 체결하며 1년 단기 계약을 맺었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신빙성을 더한다. 케이뱅크 측은 당시 3년 계약을 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업계에서는 업비트가 새로운 은행과의 계약을 염두에 뒀다는 추측이 제기됐다.
케이뱅크와 단기 재계약을 맺은 이후부터 하나은행과의 협업이 잦아진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 11월 업비트는 실명 인증 수단으로 ‘하나인증서’를 금융권 인증서 가운데 최초로 추가했다. 하나인증서는 하나은행 계좌가 있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같은 달 주최한 UDC 행사에도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은행 연사가 참석해 블록체인 사업 계획을 공유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비트는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를 통해 가상자산 업계와 금융당국 간 소통을 사실상 주도해온 만큼 케이뱅크 재계약 당시 이미 법인 계좌 허용 가능성과 허용 예상 시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법인 계좌 허용을 그때부터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KB국민은행이 국내 2위 거래소 빗썸과 실명계좌 제휴를 맺은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법인 계좌 수가 국내 최다로 알려진 KB국민은행을 통한 가상자산 투자가 가능해지며 기관 투자가가 업비트 이용만을 위해 케이뱅크 법인 계좌를 개설할 유인이 적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법인 계좌 허용 시 대면 접촉을 통해 법인 영업이 가능하고 이미 법인과 형성된 관계도 많은 시중은행이 인터넷은행에 비해 법인 영업에 유리하다”며 “최근 금융당국이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AML) 준수 여부를 엄격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만큼 AML 인력이 적은 인터넷은행이 개인 투자자에 비해 거래 규모가 크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법인 거래를 문제 없이 지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우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비트 실명계좌 제휴는 가상자산 법인 시장을 겨냥해 그륩사 차원에서 가상자산 사업 확장에 속도를 붙이고 있는 하나금융그룹의 방향성과도 맞아 떨어진다. 하나은행을 비롯해 하나증권과 하나TI 등 하나금융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해 글로벌 가상자산 커스터디 업체 비트고의 한국 법인 대규모 증자에 참여하며 가상자산 사업을 본격화했다. 하나금융그룹은 비트고 지분 25%를 확보한 상태다.
이에 대해 업비트는 “실명계좌 은행 변경 추진 여부는 계약 사안이라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케이뱅크와 하나은행 계좌를 동시에 지원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에 1사 다은행 체제 구축을 타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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