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수출통제 조치에 맞서 대중국 100% 추가 관세를 예고하자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이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가상화폐 전체 시가총액이 짧은 시간 동안 4000억 달러(약 571조 원)나 증발했다. 전 세계 가상화폐 파생상품 시장에서도 하루 만에 190억 달러가 청산됐다.
중요한 것은 가상화폐 폭락이 스테이블코인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코인 투자자들의 경우 가상화폐를 처분하면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 보관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2위 가상화폐거래소인 빗썸에서는 대출 자동 청산에 따른 유동성 문제가 겹치면서 순식간에 테더(USDT) 가격이 달러당 5700원까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국내 다른 거래소와 달리 빗썸에서만 USDT의 이상 급등으로 청산이 진행되자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실제 청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앞서 빗썸의 코인 대여 서비스는 지난 3개월(6~8월)간 1000억 원이 넘는 강제 청산이 발생하면서 투자자 보호에 경고등이 켜진 바 있다.
실제로 최근 가격 급변동 과정에서 해외에서도 1달러에 고정된 코인의 가치가 깨지는 디페깅 현상이 나타났다. 세계 3위 규모의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이(USDe) 역시 11일 가상화폐 폭락장에서 1달러에 고정된 가치가 깨지는 디페깅 현상을 겪었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바이낸스에서 1달러 안팎을 유지하던 USDe는 이날 오전 6시 돌연 0.65달러까지 급락했다. 발행사 에테나랩스는 USDe는 초과 담보 상태로 정상 작동했으며 바이낸스 내부 오류로 인한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지만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할 스테이블코인이 단기간 큰 폭의 가격 변동성을 보이면서 시장에는 불안감이 확산됐다. 레이철 루커스 BTC 마켓 애널리스트는 “스테이블코인의 디페깅은 잠깐이라도 일어날 경우 시장을 뒤흔들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외에서 스테이블코인 가격이 급격하게 변하는 사건은 투자자와 고객들의 신뢰를 깨뜨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달러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이지만 순간적인 수급 불균형과 거래소 환경에 따라 안정성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앞둔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가격 왜곡 현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병준 디스프레드 연구원은 “향후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발행되고 대여 서비스가 지원되면 이번 빗썸과 동일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단기간에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되지 않도록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접근성을 완화하고 유동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유동성 확대를 위해 시장조성자(LP)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조성자는 특정 종목에 대해 지속적으로 적절한 매매 호가를 제시해 시장 유동성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윈터뮤트 같은 시장조성자 업체들이 유동성 공급과 가격 안정화를 지원하고 있다. 코인베이스와 같은 거래소들도 유동성이 낮은 거래쌍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체계적인 유동성 관리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순간적인 수급 불균형에 따라 USDT 가격이 올라갔듯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충분히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예방하려면 국내 가상화폐 시장에서 시장조성자가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빗썸은 가격 급등 사태에 대해 “매수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해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며 “일부 대여 서비스 청산도 있었지만 주요 원인은 유동성”이라고 해명했다.
- 박민주 기자,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