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다시 900만 원대로 올라서는 등 시장의 관심이 뜨겁다. 7,000조 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블랙록이 암호화폐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골드만삭스도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했다. 여기다 9월21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를 허용할 것이란 기대감까지 더해졌다.
사실 투자자들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과 비즈니스에 더 목 말라 한다. 기존 사업의 확장된 형태로 신규 사업을 찾기도 하지만, 패러다임을 바꿔 새로운 블록체인 분야에서 블루오션을 찾겠다는 시도도 많다. 이처럼 블록체인 전문가에 대한 시장의 수요는 폭증했지만, 공급은 제자리 걸음이다.
기업들은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엔지니어를 직접 채용 하려고 하지만 녹록지 않다. 외부에 있는 블록체인 전문회사를 찾아 ‘소프트웨어 개발 위탁계약’ 등의 형태로 외주제작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블록체인 개발자가 있는 소프트웨어 외주사들은 쏟아지는 개발용역 의뢰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상황이다. 다만 외주용역을 의뢰하는 곳은 큰 회사보다는 스타트업 등 작은 곳이 많다. 대부분 “블록체인 서비스를 개발해 달라”, “블록체인 기술을 기존 서비스에 접목해 달라”, “ICO(암호화폐공개)를 할 수 있게 합의 알고리즘을 짜 달라” 고 부탁한다.
문제는 개발사가 ‘소프트웨어 개발 위탁계약’을 맺고 성과물까지 완성해서 전달했지만, 발주사가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물을 제작해 납품하는 경우라면 돈을 받고 실물을 넘겨주거나, 돈을 못 받으면 실물을 받아오면 되지만 소프트웨어는 상황이 다르다.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단 블록체인 분야 뿐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납품하는 모든 개발사들이 직면할 수 있는 문제다.
소프트웨어를 납품했는데, 돈을 못 받은 경우 개발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개발된 제품의 소유권, 저작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제일 먼저 계약서를 찾아야 한다.
보통 발주사와 개발사가 맺는 ‘소프트웨어 개발 위탁계약서’에는 “발주사의 요청에 의해 개발되는 제품의 지적 및 상업적 소유권 일체는 발주사에 귀속된다. 개발사는 개발되는 제품과 이를 응용한 유사제품을 개발하는 행위를 포함해 발주사의 승인 없이 스스로 버전업을 하거나 이를 제 3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 계약의 이행을 위해 발주사로부터 취득한 일체의 사항을 타인에게 발설 또는 유출해서도 안 된다”는 규정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저작권법에 의하면 컴퓨터 프로그램도 저작물에 포함된다. 그래서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자가 된다. 저작권법은 창작자 주의를 택하고 있다. 창작에 단순히 아이디어를 제공한 자나 창작을 주문한 자 등은 원칙적으로 저작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비록 계약서에 ‘발주사의 요청에 의해 개발된 제품의 지적 및 상업적 소유권 일체는 발주사에 귀속된다’고 적혀 있어도 프로그램의 법적 저작자는 창작을 한 개발사가 된다.
그러나 판례는 다르다.
대법원은 “비록 컴퓨터 프로그램의 저작자는 창작을 한 개발사라 해도 계약서에 ‘발주사의 요청에 의해 개발되는 제품의 지적 및 상업적 소유권 일체는 발주사에 귀속된다’는 규정은 개발사가 저작권을 발주사에게 양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해석했다. 대법원은 발주사가 저작권을 넘겨 받았다고 본 것이다. 결국 개발사가 계약을 맺은 후에는 저작권법의 저작자로서 제품의 소유권(저작권)을 인정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발주사가 전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자금을 투자하고 개발사는 인력만을 제공한 경우, 개발사는 사실상 발주사에 고용된 것과 같다고 본다. 그래서 개발사는 업무상 프로그램을 창작한 것으로 발주사가 창작자로서 저작자가 된다.
블록체인 기술 개발 관련 소송의 또 다른 난점은 개발사가 암호화폐를 들고 있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돈을 달라고 소송을 할 때, 상대방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건다. 용역대금을 못 받은 개발사도 발주사를 상대로 개발용역대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면서 소송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소송 제기 전이나 승소한 이후에 발주사의 재산에 대한 보전소송 또는 강제집행을 하게 된다.
문제는 발주사의 재산이 부동산이나 일반 예금계좌가 아닌 암호화폐 계좌에 있는 코인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우선 암호화폐는 전달되는 과정에서 거래소의 참여 없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지정한 방법을 통해 거래하는 ‘자율거래’로 이뤄진다. 암호화폐 보유자가 직접거래(P2P) 방식으로 암호화폐를 제 3자에게 이전하는 것을 거래소가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법원에 요청해도 발주사가 보유한 암호화폐 지갑 및 키 파일(key file) 등에 대해 처분금지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최근 일본의 한 법원이 암호화폐 계좌에 있는 코인에 대해 압류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거래소는 “전자지갑은 중개회사가 관리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이중지불의 위험이 있어 반환할 수 없다”며 명령에 응하지 않았다. 법원의 강제집행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암호화폐는 태생적으로 중앙에서 통제하는 관리자가 없다. 마찬가지로 공권력에 의한 압류 등이 불가능하다. 결국 기술적, 현실적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강제집행은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아직 암호화폐에 대한 확실한 강제집행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타서 암호화폐로 압류를 피하거나 자산을 은닉할 수 있다. 시장의 우려가 큰 부분이고, 국회와 정부가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우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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