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위안화’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일까. 최근 중국 전역에서 민간 암호화폐 발행과 유통을 제재하고 나섰다. 관련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부 지역에서는 식당에서 암호화폐 업체들이 주최하는 행사마저 막았다.
최근 중국에서 들려온 잇단 블록체인 산업 육성 소식과는 다소 분위기가 다르다. 불과 수개월 전까지 항저우와 선전 등 중국의 지역 정부는 1조원 규모의 블록체인 투자펀드를 조성하겠다는 소식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애초 블록체인 기술은 육성하되 암호화폐 거래는 막겠다는 게 중국의 일관된 정책 기조지만, 최근 2주 사이 부쩍 강화된 중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를 두고 현지 기업에서도 “새로운 규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의 진의는 무엇일까. 업계와 전문가들의 분석은 “국가주도 암호화폐 발행을 위한 수순”이라는데 무게 중심이 놓이고 있다.
◇‘암호화폐 사이트 접속도 안 된다’ 날로 심해지는 中의 암호화폐 규제=
지난해부터 시작된 중국 당국의 암호화폐와 ICO(암호화폐공개) 규제는 최근 들어 더욱 강해지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28일 중국 인터넷 고발정보사이트에서 ‘인터넷 불법행위 보고 가능 내용’에 토큰과 관련된 내용을 추가해 발표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토큰 또는 암호화폐를 매매하거나 사고파는 행위, 정보 중개 등 이를 포함한 기타 불법적 재정 활동”이 불법적 행위로 신고 가능해진다. 앞서 중국 국영핀테크위기관리부(CNFRRO)는 23일(현지시간) 암호화폐와 관련된 중국 사이트들의 해외 접속을 차단할 것이라 밝혔다. 현재 CNFRRO에서 차단을 위해 파악한 중국 내 암호화폐 관련 사이트는 124곳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중국 당국은 지난 21일 진서차이징, 비시지에 등 블록체인과 관련된 현지 미디어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위챗 계정을 차단했다. 일반 투자자들이 아예 암호화폐 관련 소식에 노출되는 빈도 자체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또한 북경의 주요 도심 행정구역 중 한 곳인 조양구의 금융관리국은 구내 호텔, 식당 등에서 행해지는 암호화폐·ICO와 관련된 행사들에 전면 금지조치를 내렸다.
거세지는 당국의 규제 입김에 관련 업체들도 몸 사리기에 나섰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위챗페이의 모회사인 텐센트는 위챗페이를 통한 암호화폐의 거래를 금지할 것이라 밝혔다. 알리페이의 운영사인 앤트파이낸셜 또한 암호화폐 거래와 관련된 개인 계정을 제한하거나 영구 정지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알리페이(즈푸바오)와 위챗페이는 중국 간편결제 시장의 각각 54%, 40%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당국의 움직임이 일시적인 단속 활동에 그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를 이끄는 창펑차오 CEO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새로운 규제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다”며 “이번 규제도 빠른 시일 내에 끝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바이낸스는 몰타에 거점을 두고 각국의 규제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외적인 반응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걸림돌은 쳐낸다’ 국가주도 암호화폐 위한 포석=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중국 당국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통해 민간에서 발행한 암호화폐는 규제하는 반면, 정작 중국 정부 스스로는 암호화폐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초기코인공개(ICO)를 금지했지만 같은 시기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산하 디지털 통화 연구소는 국가 주도 중앙집중형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이 법정화폐를 암호화폐 형태로 발행하는 이른바 CBDC(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 발행·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다. 이어 올 1월에는 판궁성 인민은행 부주석이 “중국이 암호화폐를 발행한다면 P2P 거래나 익명성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다 구체화된 암호화폐 발행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백권호 영남대학교 중국경영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는 블록체인 산업 자체를 당국 주도로 발전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민간이 중심이 되는) 퍼블릭 블록체인의 확산을 원하지 않는다”며 “규제하는 것은 (민간) 암호화폐의 발행 분야일 뿐”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어 “정부주도로 전자화폐를 발행하려는 시도를 위한 것”이라며 “이미 인민은행을 통해 중국의 디지털화폐 발행 작업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당국이 정부 주도의 암호화폐로 생태계를 일원화하기 원하는 만큼 민간에서 주도하는 퍼블릭 블록체인 암호화폐 발행은 억제한다는 해석이다.
황핑핑 테크앤로 중국 변호사 역시 “퍼블릭 블록체인의 경우 토큰을 활용하게 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지만, 중국 정부에서 꺼려 한다”며 “당분간 암호화폐 거래 금지 등 관련 규제는 더욱 엄격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중앙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이 들어가지만, 완전히 탈중앙화되지 않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라며 “블록체인 산업과 기술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암호화폐는 국가발행 화폐로 중앙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CBDC, 강한 위안화의 기틀이 될까=
국영 디지털 화폐 발행 시도는 흔들리는 위안화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통화 정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연초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전쟁으로 인해 위안화 환율은 8월 말 현재 지난 3월 보다 9% 하락한 모습이다. 백 교수는 “환율 전쟁에서 밀리고 있는 중국 정부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금융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달러 패권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영 디지털 화폐를 고려하는만큼 더더욱 민간의 ICO는 막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중국은 블록체인 분야를 떠나서라도 그동안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 3월 26일 상하이 선물거래소 산하 상하이 국제 에너지 거래소(INE, International Energy Exchange)가 위안화 기반 원유 선물거래를 시작한 게 대표적인 예다. 현재 국제 원유시장에서 결제 수단은 달러다. 중국은 위안화 기반의 선물 거래상품을 내놓으며 원유 거래 시장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안화 이른바 ‘페트로 위안’ 전략에 나섰다.
서병기 울산과학기술원 경영학부 교수 겸 UNIST 블록체인 연구센터 센터장은 “전문가들의 우려와 과거의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결제통화를 위안화로 지정함으로써 페트로 위안화를 발판으로 위안화 기축통화의 꿈을 실현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며 “중국의 원유의 최대 소비국가로 뜨고 있고, 이에 판매자인 러시아나 중동에서 위안화 원유 결제에 협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이용해서 (위안화 기축통화의 꿈에) 드라이브를 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 교수는 이어 “결국 중국은 위안화 위상 강화라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페트로 위안화나 국영 암호화폐 발행 등 다양한 형태의 시도를 하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가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자국 통화의 위상을 끌어올리려는 곳은 중국뿐만이 아니다. 최근 태국 중앙은행은 암호화폐 발행을 위한 개념 증명에 돌입했으며, 베네수엘라는 국영 암호화폐 페트로와 현지 법정화폐 ‘소버린 볼리바르’를 연동해 현지 통화가치를 안정시키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서 교수는 “휘발유 차 산업이 덜 발달한 중국에서 전기차 산업이 더 빨리 발전하듯 현지 통화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국가에서 통화의 위상을 높이는 방법으로 국영 디지털 화폐를 고려하는 추세”라며 “다만 국가의 지급보증 신용도, 선진국의 견제 등이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만큼 각국의 취지가 실현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decenter.kr
- 원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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