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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터 아카데미 4부]②토큰 이코노미 설계를 위한 암호경제학 들여다보기


간혹 블록체인 기술을 컴퓨터 공학의 영역으로 한정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 영역에서의 컴퓨터 공학은 일부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는 기술적 혁신과 더불어 적용 및 응용 면에서 비즈니스 혁신이 함께 추구되어야 하는 분야이다. 블록체인의 기술 또는 네트워크의 개발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과정과 또 이를 구현하고 지탱해줄 견고한 메커니즘 설계 과정에 있어 개발자의 공학적 지식뿐 아니라 기업가적 마인드나 경제구조에 대한 통찰력, 인간의 심리나 행위와 관련된 지식 등 다방면의 시각이 필요하다. 블록체인은 참여 노드의 자발적 이익추구 활동이 곧 최적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생태계 구조를 설계하여 중앙기관의 통제 없이도 네트워크가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것은 토큰의 발행량이나 분배방식, 합의 알고리즘, 네트워크 참여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의 적절한 활용 방식 등 하나의 경제구조를 설계하여 또 다른 사회를 만드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프로그래밍을 통한 기술적 구현 외에 다양한 선택의 과정이 필요하며, 그 선택의 결과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블록체인 시스템은 탈중앙화 된 분산원장 시스템으로 합의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의 투명성과 무결성을 확보하여 참여자 간의 안전한 거래를 보장한다. 이때, 다수합의에 따른 증명 시스템에 있어 어떻게 노드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것이며, 어떻게 조작될 위험을 배제한 채 다수결 원칙 기반 알고리즘을 유지하도록 구현할 것인가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축 시 이에 대한 거듭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더불어 한 차원 크게는, 해당 생태계가 장래에도 자율적으로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적절한 메커니즘 설계와 관련된 깊은 사려가 요구될 것이다. 이와 같이 블록체인 네트워크 구축 시 신중히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과 근거를 제시하고자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암호경제학이다.


암호경제학은 비트코인이라는 암호화폐의 인지도가 상승하고,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부상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실용학문이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은 ‘암호경제학이란, 원하는 어떤 특성을 가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암호학과 경제적 인센티브를 사용하는 것을 연구하는 분야’라고 정의하였다. 즉, 암호경제학은 암호학을 이용하여 안전한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학문이다. 종종 토큰 이코노미와 암호경제학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토큰 이코노미는 ‘토큰’을 활용한 보상 메커니즘 설계에 국한된 개념이다. 토큰 이코노미는 ‘토큰’이라는 보상을 통해 특정 행동의 유지 및 강화를 이끌어내는 메커니즘을 다룬다. 이와 다르게 암호경제학은 암호학과 접목되어 보안이 강화된 경제적 보상분배 구조와 관련 규칙들의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학문으로, 보다 상위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토큰 이코노미에 대한 운영 원리 및 사례 분석에 앞서 암호경제학의 시선에서 네트워크의 전체적인 큰 그림을 바라봄과 동시에 부분적인 작동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통합하여 하나의 새로운 인식의 틀을 다질 필요가 있다.



암호경제학을 엿보기 위한 예로 자주 등장하는 것에 비트코인이 있다. 비트코인 생태계는 경제적 인센티브 구조를 통해 네트워크가 유지된다. 우선, 채굴자는 채굴 행위를 통해 블록을 생성하고 비트코인으로 보상을 받는다. 이때, 채굴자는 자신의 하드웨어 및 전기를 블록 생성에 활용하게 됨으로써 비트코인 네트워크 유지에 참여하게 된다. 블록의 생성은 즉 네트워크 유지를 위한 기여 행위가 되는 것이다. 비트코인이라는 경제적 보상은 채굴자들이 계속해서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유인책으로 작용하여 채굴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만약 채굴에 대한 보상이 없었다면, 채굴을 위한 하드웨어를 구비하거나 네트워크 유지를 위해 전기료를 지불하려는 참여자가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토큰 이코노미의 개념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 암호경제학 측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비트코인은 지금부터다. 비트코인은 암호화 기술 기반 프로토콜을 이용한다. 암호학은 공개키/개인키 방식을 가능하도록 지원하여 비트코인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거래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해시함수를 이용한 블록의 연결은 거래의 순서에 따른 체인의 형성과 과거 거래내역 변조를 방지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하였다. 이처럼 암호화 기술은 비트코인 시스템의 보안성을 탄탄히 유지하는 핵심 기술이다. 공개키/개인키와 같은 구조가 불가능했다면, 비트코인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해시함수가 없었다면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 확보가 어려워 비트코인의 안전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자산의 안전한 보관과 안전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면, 당연히 비트코인 계좌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을 것이며, 채굴에 대한 보상을 효율적으로 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암호화 기술에 있어 채굴에 대한 보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상이 있어 채굴을 통한 블록생성이 이루어지고, 암호기술 기반 거래 및 자산의 안전한 보관이 가능하다. 이러한 순환구조로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궁극적으로 자율적 운영이 가능한 생태계가 되었다.


블록 생성 시 소모되는 하드웨어 및 전기, 즉 경제적 비용은 비트코인의 보안모델이 된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방법에는 흔히 PoW의 취약점으로 거론되는 ‘51%의 공격’이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는 다수결원칙을 기반으로 데이터의 무결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개인 혹은 집단이 과반 이상의 해싱파워를 장악하게 되면 전체 네트워크에 대한 통제(control)가 가능하다. 즉, ‘51%의 공격’은 거래내역을 조작하거나 새로운 거래의 유효화를 선택적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노드의 51%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보유한 해싱파워의 규모에 따른 하드웨어 및 전기료(경제적 비용)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채굴 난이도를 의도적으로 상향 조절하여 51% 공격이 곧 본인의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실제 수치를 가져와 보자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향한 51% 공격에 필요한 하드웨어 비용만 해도 7,108,829,591 달러로 한화 약 7조9600억 원에 달한다(19.2.28 기준). 51%의 해싱파워를 차지하여 거래내역을 컨트롤하고 이익을 취하려면 위와 같은 막대한 비용을 소비하도록 설계된 메커니즘은 해당 공격으로부터 비트코인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지금까지 암호경제학 관점에서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살펴보았다. 암호학 기반 경제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합의 알고리즘에 따르는 경제적 비용 관련 보안 이슈를 함께 살펴보았다. 블록체인 전문 벤처펀드 원컨퍼메이션(1confirmation) 설립자인 닉 토마이노(Nick Tomaino)는 ‘암호경제학은 적대적 환경에서의 경제적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탈중앙화된 분산 시스템을 공격하려는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행위자들은 언제나 있겠지만, 결국 P2P 네트워크는 성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암호화 기술이 네트워크의 보안성을 강화하고, 경제학적 메커니즘 설계는 모든 참여자가 네트워크에 기여하도록 유도하여 이 둘의 조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생태계가 번창하도록 이끈다는 것이다. 이는 암호경제학의 매력을 잘 나타내는 대목이다. 암호경제학은 아직 연구 영역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진 않지만, 암호기술 기반의 경제 시스템은 탈중앙화 생태계의 중심기반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에 학문의 발전 가능성 또한 무궁무진할 것으로 전망된다./이화여대 융합보안연구실

이화여대 융합보안실(CS Lab)을 이끌고 있는 채상미(왼쪽)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경영학 석사, 뉴욕주립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업의 정보보안 정책과 보안 신기술 도입 전략, 블록체인의 활용과 적용을 연구 중이다. 유지은(오른쪽) 연구원은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빅데이터 분석학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블록체인과 빅데이터 분석, 정보보호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심두보 기자
shim@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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