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국내 블록체인 업계에서 ‘유망 프로젝트’를 결정짓는 기준 중 하나로 ‘클레이튼 파트너’ 여부가 손꼽히고 있다. 카카오라면 좋은 프로젝트만을 선별했을 것이란 믿음에 따라 투자자, 암호화폐 거래소는 물론 다른 디앱(DApp,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 프로젝트들까지 모두가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대기업의 진입으로 블록체인 생태계가 확대됐다는 평가와 함께, 블록체인 산업마저 대기업이 기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뒤따른다.
이후 몇 개월 단위로 2, 3차 디앱 파트너가 발표되고 9개였던 파트너가 51개로 늘어나면서 가격 상승 폭은 덜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은 ‘클레이튼 파트너 선정’을 호재로 보고 있다.
투자자가 반응하자 암호화폐 거래소는 ‘클레이튼 모시기’에 돌입했다. 우선권을 잡은 것은 코인원이다. 코인원은 “클레이튼 파트너스의 토큰 스왑은 코인원에서 가장 먼저 지원한다”며 7월 한 달 동안 클레이튼 디앱 파트너들을 매주 릴레이로 상장한다고 밝혔다.
코인원이 발 빠르게 움직인 이유는 분명하다. 클레이튼의 영향력이 주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 기존에 다른 거래소에 상장됐던 프로젝트들이 클레이튼으로 토큰 스왑(Swap)을 진행하면 코인원은 해당 토큰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또 클레이튼 파트너가 된 덕분에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프로젝트들도 상장할 수 있다.
거래소까지 움직이자 클레이튼 파트너가 되는 게 목표라는 프로젝트들도 생겨났다. 한 디앱 프로젝트 관계자는 “클레이튼 쪽과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야기가 잘 안 되어 아쉽다”며 “클레이튼 파트너로 발표되면 거래소 상장도 할 수 있고, 가격 상승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파트너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는 지난 9일 열린 ‘클레이튼 메인넷 론칭 이벤트’에서 “수십 개 프로젝트들의 파트너 신청서를 받았고, 검토 후 파트너를 결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클레이튼 생태계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빠질 수 없는 ‘탈중앙화’ 가치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클레이튼을 만든 카카오의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는 디앱을 ‘비앱(BApp, Blockchain Application)’이라 부른다. 블록체인 서비스의 기본이 탈중앙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탈중앙화를 구현하지는 못했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서비스를 만드는 게 먼저라는 뜻에서 그라운드X는 ‘비앱 파트너’들을 끌어모았다. 실제 클레이튼이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방식도 이와 같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누구나 노드가 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LG전자, 셀트리온 등 거물들이 노드가 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굳이 따지자면 절반만 퍼블릭 블록체인인 셈이다.
세상엔 다양한 블록체인 플랫폼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클레이튼 같은 플랫폼도 필요할 테지만, 문제는 이것이 기준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수많은 블록체인 프로젝트이 중개자를 없애는 탈중앙화를 지향하며 등장했고 사람들은 이에 공감해왔다.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이 탈중앙화만은 아니지만,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를 선별할 때 탈중앙화를 따지지 않는다면 중요한 가치를 놓치게 된다. 따라서 ‘클레이튼 파트너=좋은 블록체인 서비스’ 공식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이튼의 방식은 이미 거래소 지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인원 관계자는 “클레이튼 파트너 프로젝트 중에서도 코인원 자체 상장 심사 기준을 충족한 프로젝트들만 상장한다”고 밝혔으나, 클레이튼 파트너일 경우 심사를 받는 기회를 잡는 것은 사실이다. 무작정 상장 신청을 하는 것보다는 경쟁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거래소들도 이 같은 움직임을 따를 것으로 예측된다. 한 클레이튼 비앱 파트너 관계자는 “코인원뿐 아니라 다른 거래소들도 클레이튼 기반 토큰 상장을 적극 검토 중이라 계속 논의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좋은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선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다만 그 기준을 신뢰도 높은 한 기업이 이끌어간다면, 블록체인 업계는 또 하나의 ‘신뢰도 높은 기관’을 따라가게 될 수 있다. ‘블록체인의 원조’ 비트코인 백서 서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구는 “신뢰받는 제삼자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은”이다. 국내 블록체인 업계가 제삼자 하나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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