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을 골자로 한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시중은행은 물론 인터넷은행과 카드사들은 앞다퉈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권 출원에 나섰다. 시장 활성화 기대감에 관련 종목 주가도 연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친(親) 가상자산’ 공약을 내걸었던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벌어진 변화다.
하지만 산업 육성을 이끌 가상자산사업자의 지위는 8년째 제자리다. 국내에서 가상자산사업자는 여전히 ‘벤처기업 제외 업종’으로 묶여 있다. 2018년 개정된 벤처기업 육성 특별조치법 시행령에 따르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 자산 매매·중개업은 유흥 주점업이나 사행 시설업, 무도장 운영업 등과 함께 벤처기업 지정 제외 업종으로 규정하고 있다. 룸살롱이나 카지노 같은 업종과 사실상 동급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의미다.
관련 법에 따라 2018년 말 국내 1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인 두나무는 벤처 인증을 박탈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업종 기준 변경으로 벤처기업 인증이 취소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벤처 인증이 취소되면 소득세·법인세 감면을 포함한 창업벤처·중소기업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가상자산사업자를 유흥업소와 동급으로 취급하느냐”고 성토한다.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가상자산 기업들이 주류에 올라서 있다.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코인(USDC) 발행사 서클은 지난달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지 한 달 만에 주가가 500% 넘게 뛰어오르며 주목을 끌고 있다. 2021년 나스닥에 입성한 미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이더리움 레이어2 ‘베이스’를 자체 개발해 디지털 금융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단 한 곳의 가상자산 기업조차 없는 우리로서는 정말 남의 나라 얘기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이야말로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며 “전 세계가 이제 출발선에 서 있는 만큼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도 가상자산을 사행성 투기 산업으로 바라보는 낡은 시선부터 거둬들이고 제도를 손봐야 한다. 경쟁국들이 출발선에서 발을 떼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 도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