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채굴기 시장 점유율 2위 기업인 카난(Canaan)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중국 블록체인 기업으로는 최초다. 동종 업계 기업들은 카난의 상장을 고무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번 상장을 통해 채굴기 제조 기업의 미래 먹거리는 무엇인지도 나타났다.
이번 IPO를 진행한 카난은 엄밀히 말하면 케이만제도에 법인을 둔 지주사(Canaan Inc)다. 이 지주사 산하에 홍콩 법인인 ‘카난 크리에이티브(Canaan Creative Holdings Limited)’가 있으며, 카난 크리에이티브는 중국 본토 법인인 ‘항저우 카난 크리에이티브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 리미티드(Hangzhou Canaan Creative Information Technology Limited)’를 지배하고 있다.
카난은 서류에서 비트코인 채굴기 제조에 대한 부분도 언급했으나, AI칩 개발 기업임을 더욱 강조했다. 카난은 “비트코인 채굴기용 ASIC 응용 연구 개발을 통해 빠른 속도로 노하우를 습득했다”며 “이 경험을 통해 쌓은 기술 및 자본으로 AI칩 관련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칩은 AI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반도체다. 즉 AI 특화 반도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칩은 기존 CPU(중앙처리장치)나 GPU(그래픽처리장치)와 같은 시스템 반도체보다 AI 데이터 처리를 10~100배 이상 빠르게 처리한다.
카난이 AI칩 부분을 강조한 이유는 비트코인 가격에 따른 채굴기 제조 기업의 불안정한 수익성 변동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 현지에서도 블록체인 기업의 상장이 아닌 ‘중국 AI 칩 개발 기업 중 미국 증시 최초 상장’이라는 타이틀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홍콩증시 상장을 노렸던 채굴기 시장 점유율 1위 비트메인의 IPO 실패 이유로도 비트코인 가격 폭락이 거론된다.
카난 역시 2018년 비트코인 가격 하락이 2019년 1분기까지 실적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2017년 카난 블록체인 총 매출은 13억 810만 위안(약 2,206억 원)이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이듬해인 2018년 총 매출은 전년 대비 106.8% 상승한 27억 530만 위안(약 4,562억 원)을 기록했다. 같은 시기 순이익은 2017년 3억 7,580만 위안(약 634억 원)에서 67.4% 하락한 1억 2,240만 위안(약 206억 원)으로 떨어졌다.
2019년에는 매출 하락 폭이 커졌다. 2018년 상반기 총 매출이 19억 4,710만 위안(약 3,284억 원)이었던 데 비해 2019년 상반기에는 전년동기 대비 85.2% 후퇴한 2억 8,880만 위안(약 487억 원)을 기록했다. 2018년 상반기에는 2억 1,680만 위안(약 366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9년 상반기에는 3억 3,090만 위안(약 558억 원)의 적자를 보았다. 비트코인 가격 하락으로 채굴 시장이 침체기를 겪으며 1년 새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카난은 상장을 위한 자료를 통해 “2019년 2분기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소폭 회복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2018년 비트코인 가격이 큰 폭 하락하면서 채굴기 시장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어 “비트코인 가격 회복과 함께 영업 실적이 개선될 것 같지만, 비트코인 가격은 여전히 회사 ADS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 성장 계획에서도 채굴과 블록체인이란 단어는 빠져 있다. 카난은 △슈퍼컴퓨팅 솔루션 분야 입지 강화 △고효율 집적회로(IC) 개발 투자 △신규 AI 상품 출시 △ AI 플랫폼 비즈니스 강화 및 독자적인 AI 상품 개발 △지속적인 서플라이체인 관리 △해외 사업 확대 등을 향후 성장 계획으로 밝혔다.
이은철 비트퓨리 한국 대표는 “네트워크 참여자가 많은 만큼, 비트코인은 신뢰도가 높고 쉽사리 깨기 힘든 망을 형성하고 있다”며 “채굴 완료 후에도 비트코인 블록체인을 이용하려는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32년에는 비트코인 시장 규모가 전체 금 시장과 맞먹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비트코인 가격은 꾸준한 상승곡선을 그리는 게 아니라, 가격 폭락과 폭등을 계속하는 일종의 ‘반감기 사이클’을 두고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때문에 폭락 시기, 채굴기 판매량이 감소할 경우 타격을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사업 모델이 필요하고, 그게 AI칩이라는 것이다.
채굴기 제조 기업이 대안으로 AI칩을 선택한 데는 기술 및 시장의 동일성이라는 배경이 있다. 이은철 대표는 “채굴기에 탑재하는 채굴칩을 제조할 때도 적은 에너지로도 작동 가능한 고효율 페러럴 프로세서가 필요하다”며 “이 페러럴 프로세서는 빠른 계산을 요구하는 AI칩을 개발할 때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채굴칩과 AI칩을 동시에 연구 개발하기 용이하다는 뜻이다.
향후 AI가 더욱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데이터 센터가 필요해지면 채굴장(마이닝풀)을 AI 데이터 센터로 전환할 수도 있다. 이 대표는 “데이터 센터에 있어서는 에너지 가격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미 대형 채굴장들은 싼값에 전기 에너지를 조달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어 향후 채굴장을 AI 데이터 센터로 전환하기도 쉽다”고 설명했다.
/노윤주기자 daisyroh@decenter.kr
- 노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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