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5,000만 원이면 암호화폐 거래소를 열 수 있던 때가 있었다. 외주 업체에 거래소 인프라 개발을 맡기면 누구나 거래소를 열 수 있었다. 지난해 말 우후죽순 생긴 중소형 거래소는 자체 개발인력 없이 쉽게 ‘수수료 장사’에 뛰어들었다.
1년여가 지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1년 동안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또 자금난 및 경영난에 처한 거래소도 잇따라 생겼다. “거래소가 걸러지고 있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온다.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거래소는 결국 문을 닫게 되리라는 전망도 이에 힘을 더한다.
하지만 특금법의 시행 가능성만으로도 거래소 업계의 큰 거름망이 됐다. 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누구나 거래소를 열기 불가능해진다. 개정안에 따르면, 가상자산 사업자(거래소 사업자)는 반드시 신고하고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 이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이때 대표적인 신고 수리 요건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인증 가상계좌 두 가지다. ISMS 인증을 받지 못하면 실명인증 가상계좌를 발급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이에 따라 가상자산 사업자가 될 수 없다.
업비트와 빗썸 등 대형 거래소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했다. 그러나 은행으로부터 실명인증 가상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중소형 거래소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ISMS 인증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인증심사 수수료만 해도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라며 “컨설팅과 보안 솔루션 도입 비용과 운영비를 더하면 1억 원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증을 획득하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거래소는 특금법 연내 통과 여부와 관계 없이 비용 계산에 들어가야 한다. 적은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했거나 경영난을 겪는 거래소가 이 인증에만 1억 원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ISMS 인증과 실명인증 가상계좌 획득 가능성이 불투명한 거래소는 서비스 종료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지난 19일 거래소 중 하나인 씨피닥스(CPDAX)는 일부 암호화폐 거래 지원 종료를 알리는 공지를 올렸다. 씨피닥스는 그 배경으로 실명인증 가상계좌 인증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보이스피싱은 대표적인 거래소 사고다. 실명인증 가상계좌가 아닌 거래소 법인계좌(일명 벌집계좌)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거래소는 이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악용될 경우 그 피해를 직접 책임져야 한다. 최근 코인제스트는 법인계좌 보이스피싱 문제를 해결하면서 추가 비용을 지출했고, 이 때문에 자금난에 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5월 파산한 거래소 트래빗도 법인계좌가 보이스피싱에 피해를 입으며 은행으로부터 지급정지 통보를 받았다.
에어드랍 실수나 해킹 등 다른 사건·사고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경우도 있다. 코인제스트는 지난 3월 WGT코인을 에어드랍해야 하는데 실수로 비트코인(BTC)을 에어드랍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로 인해 거래소는 막대한 세금을 부과해야만 했다.
암호화폐를 도난당한 거래소는 대부분 그 피해액을 자체 자금으로 충당한다. 지난달 580억 원 규모의 이더(ETH)를 도난당한 업비트는 회사자금으로 이를 메웠다. 빗썸은 회사가 보유한 150억 원 규모의 이오스(EOS)를 도난당하기도 했다. 자금력을 갖춘 거래소는 도난에 대응할 수 있지만, 중소형 거래소에서 해킹 혹은 도난을 당하게 될 경우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고스란히 투자자 피해로 연결된다.
비트소닉은 불완전한 비즈니스 모델과 마케팅으로 고객의 신뢰를 잃었다. 비트소닉은 수수료 수익을 회원에게 비트소닉(BSC)으로 배당한다며 자체 토큰을 발행했다. 이 같은 마케팅은 한때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공급 대비 BSC의 수요가 발생하지 않으면서 BSC의 가격은 급락했다. 비트소닉은 하한가를 임의로 정해 BSC 매도를 막았다. 또 최근에는 이 하한가 정책을 폐지했다. 회원들은 이 같은 비트소닉의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비트소닉은 이 같은 비난을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거래소 오케이엑스와의 오더북 공유 소식을 전했지만, 오케이엑스가 이를 부인하면서 신뢰는 더욱 추락했다.
/박현영기자 hyun@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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