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를 결정할 때 크게 3가지를 봐요. 첫째는 팀 구성원이 사업 분야에 특별한 전문 지식이 있는가. 둘째는 사업을 하면서 자금 조달을 잘할 수 있는가. 셋째는 유능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영입할 수 있는가 등을 주의깊게 살펴보죠."
배기홍 스트롱벤처스 대표는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공통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회사가 투자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세 가지 원칙을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공통점을 꼭 집어 말한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세 영역에서 강점이 있는 기업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근 디지털 자산은행 샌드뱅크를 운영하는 디에이그라운드에 투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 대표가 이끌고 있는 스트롱벤처스는 미국 로스엔젤레스(LA)에 있는 한국계 벤처캐피탈(VC)이다. 주로 초기 투자를 많이 한다. 지난 2013년 암호화폐 거래소 코빗에 투자했으며 이후에도 암호화폐,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에 꾸준히 투자를 이어왔다.지금까지 비트로봇, 겜퍼, 펄스, 스트리미(암호화폐 거래소 '고팍스' 운영)등이 스트롱벤처스의 투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배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모든 암호화폐, 블록체인의 입구"라며 “코빗 투자 지분을 완전히 매각한 후 다시 고팍스에 투자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업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선 거래소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디에이그라운드와 스트롱벤처스의 인연은 국내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에서 시작됐다. 이현명 디에이그라운드 대표는 “프라이머 클럽 17기로 선정된 뒤 배 대표의 멘토링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 전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배 대표는 “한국에서 프라이머 벤처 파트너로도 활동을 하고 있다”며 “과거 이쪽에 투자한 경험이 있기에 디에이그라운드를 멘토링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고 밝혔다. 디에이그라운드는 프라이머에서 시드 투자를 받고, 스트롱벤처스에서 후속 투자를 받은 것이다.
배 대표는 이 팀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사업이 어떤 위험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투자를 받으러 온 스타트업에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은 “사업이 잘 되면 어떻고, 잘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이다. 대다수는 투자를 받기 위해 안 좋은 점을 희석해 대답한다. 반면 이 대표는 정부 규제가 들어오면 이 사업이 위험한 비즈니스란 점을 명확히 설명했다.
디에이그라운드가 운영하는 ‘샌드뱅크’는 투자자자가 맡긴 암호화폐를 운용해 수익을 내주는 씨파이 서비스다. 이 대표는 “포트폴리오를 짜 놨다”며 “예를 들어 1,000만 원 자금이 들어오면 200만 원은 자체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비트리지 트레이딩 모델을 통해 운용되고, 300만 원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외부 수탁 기관을 통해 운용이 되고, 나머지 500만 원은 계약 관계로 묶여 있는 대출 기관에 대출을 해주고 이자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모두 모아 평균수익률에서 디에이그라운드 예대마진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식이다. 향후에는 보다 다양한 금융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문제는 아직 이러한 사업 분야에 대한 규제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제하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 시행령 내용에 따라 디에이그라운드는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이러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마련 중이다. 이 같은 위험요인을 VC에게 정확히 전달한 점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비쳐졌다.
이현명 대표는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서 장내 파생상품, 트레이딩 시스템 설계를 하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원으로 이직했다. 코인원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가 지난해 디에이그라운드를 설립했다.
그는 암호화폐 업계 쪽에서 일하다 다양한 분야가 포진해 있는 스타트업 생태계로 들어오니 확연히 차이점을 느꼈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업계 외부에선 여전히 이쪽 업계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이 대표는 “사기꾼, 투기꾼이 난무한 곳이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논쟁이 붙었을 때 이들을 설득하는 논리를 지속적으로 쌓아가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R을 할 때에도 “이 시장은 성장하고 있고, 성장하려면 이러한 비즈니스가 필요하다, 따라서 디에이그라운드는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간결하게 설득 논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 대표의 설득력은 투자 유치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배 대표는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선 자금유치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을 잘해서 성과 등 수치가 잘 나오는데도 투자 유치를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당장에 뚜렷한 성과가 없어도 펀드레이징을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루고자 하는 사업 비전을 명확하게 전달해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사람에게 투자한다는 것이다.
배 대표는 “이현명 대표가 부드러워 보여도 투자 받고 협상을 할 때는 공격적”이라며 그는 이러한 이 대표의 모습을 보면서 “대표 이사가 이 정도는 돼야 사업을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최근 국내 투자 업계에선 블록체인,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 투자에 소극적이다. 배 대표는 이러한 업계 분위기에 대해서 “사실 다른 투자자가 안 보니까 스트롱벤처스 입장에선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할 수 있어 좋은 일”이라면서도 “생태계 전반적으로 봤을 땐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선 굵직굵직한 크립토 펀드가 많이 있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투자를 활발하게 하고 있다”며 “침체기일수록 투자자가 양질의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 대표는 암호화폐, 블록체인 분야 스타트업에 계속 관심을 갖고 투자 검토를 하고 있다. 장기적 호흡으로 이쪽 분야를 봐야 한다는 게 배 대표 생각이다. 그는 “2017년 광풍이 불다 2018, 2019년 업계가 얼어 붙으면서 이쪽 시장을 처다 보지도 않는 투자자나 창업가가 많은 것 같다”며 “그러나 그 이후에 시장을 계속 봤다면 시장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트코인(BTC) 가격만 봐도 1만 달러 선에서 안정화가 됐다”며 “단기적으로는 모르겠지만 현재 이 시장은 안정화되면서 성숙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예리 기자 yeri.do@
- 도예리 기자
- yeri.do@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