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공백이던 가상자산(암호화폐) 산업에 드디어 정부가 첫 번째 입법을 진행했다. 특정금융거래정보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이하 “특금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정부는 특금법을 개정하면서 가상자산에 대한 정의 및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취급하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의무 등을 입법화했다.
특금법 개정안은 2021년 3월 25일 시행되며, 이에 맞춰 금융위원회는 작년 11월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가상자산이 스타트업 자금 조달 및 신사업 구상에 활용됨은 물론이고, 개미 투자자들의 주요한 투자처로 자리잡은 지도 오래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련된 명확한 법규가 존재하지 않아, 가상자산을 활용하는 일반 국민들이 불편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가이드라인 수준에서 ICO 금지 등 여러 조치들을 발표하긴 했으나, 법적 구속력이 없어 법원에서도 그러한 조치의 법규성을 부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모호한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번 특금법 개정안에 가상자산이 포섭된 것은 비록 만족할 만한 범위는 아니더라도 가상자산의 규제 편입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한 걸음으로 평가된다. 다만 특금법의 원래 목적은 외환과 관련한 불법자금의 국내외 유출입을 대비하는 한편, 금융거래를 이용한 자금세탁행위를 규제함에 있다. 그런데 가상자산은 법정 화폐가 아니어서 외화에 해당하지도 않고, 금융상품도 아니어서 금융거래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정부가 이번 특금법 개정안에서 가상자산을 포함한 이유는 오직 가상자산이 자금세탁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상자산과 같이 자금세탁이 용이한 자산도 흔치 않다. 비트코인과 같은 주요 가상자산의 자산 가치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지금, 아무리 큰 액수의 금전이라 하더라도 비트코인으로 교환만 하면, 손톱만한 USB에 담아서 전 세계 어디서든 교환할 수 있다. 때문에 전세계적인 자금세탁 방지 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는 주요 국가에 가상자산과 관련한 자금세탁금지를 입법화할 것을 권고했다.
특금법을 살펴보면 가상자산의 지위는 매우 특수하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가상자산은 외화도 아니고 금융상품도 아니어서, 원칙적으로 특금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상자산은 가상자산 거래소(암호화폐 거래소) 등 보편화된 플랫폼을 통해 다른 자산, 특히 법정화폐(fiat money)와 쉽게 교환 가능하다는 점에서 특별히 특금법에서 규제하게 된 것이다.
위와 같은 특금법의 배경 및 취지를 곱씹어 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도출할 수 있다. 먼저, 특금법에서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사업자를 규율하는 이유는 자금세탁의 방지에 있다. FATF도 가상자산사업자의 주요 요소로 1) 영업으로 2) 고객을 대신하여 3) 가상자산 관련 활동을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것을 꼽고 있다. 다시 말해, 고객이 가상자산을 활용하여 자금세탁 행위를 하는 것을 방조할 가능성이 있을 때, 규제 대상인 가상자산사업자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1) 영업이 목적이 아닌 일회성 가상자산 교환행위, 2) 수수료 없이 플랫폼만 제공하여 영리성이 없는 행위, 3) 타인을 위한 거래가 아닌 본인을 위한 가산자산 거래 행위 등은 비록 가상자산과 관련한 사업 활동이라 할지라도, FATF가 규제 하고자 하는 가상자산사업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FATF의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가상자산 관련 스타트업이 토큰을 발행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 행위는 가상자산 사업자의 범위에 포섭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이 ICO를 하는 것은, 1) 1회성 행위라 할 수 있고 2) 고객을 대신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이며 3) 반복적 행위가 아니므로 영리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ICO는 계속해 “사실상 금지” 방침이라고 발표한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규제 대상인 가상자산 사업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어떠한 법의 규제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해당 법률에서 정의하는 규제 대상에 포섭돼야 한다. 겉으로 보기에 유사성이 있다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규제 대상이 아니라면 해당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가상자산 사업자를 정의한 특금법도 마찬가지다. 만약 가상자산과 관련한 사업을 진행한다 하더라도, 법률에서 의미하는 “가상자산 사업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특금법의 각종 의무 적용이 없는 것이다.
특금법 상 가상자산 사업자에 해당할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에 가상자산 사업자로 신고를 해야 정상적으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다. 만약 특금법 상 가상자산 사업자에 해당하지만 신고하지 않는다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따라서 가상자산과 관련한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의 경우, 회사가 특금법 상 가상자산 사업자의 정의에 해당하는지 상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금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가상자산 사업자의 구체적인 신고 절차 등은 3월 법 시행 전 금융정보분석원이 발표할 신고 매뉴얼에 담길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아쉽게도 2021년 2월 현재 아직 담당 부서인 금융정보분석원에서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매뉴얼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4차산업의 핵심인 가상자산 산업의 중대한 이슈인 만큼, 정부 당국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오훈 차앤권 법률사무소 파트너 변호사
- 노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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