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싱가포르 마리나베이파이낸셜센터에서 ‘그랩’ 앱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그랩은 현지인들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를 찾는 전 세계인들이 택시 호출, 음식 주문, 온라인 결제 등을 할 때 애용하는 앱이다. 국내에도 비슷한 서비스들이 있지만 싱가포르의 그랩이 한국과 다른 점은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결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에 다수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싱가포르 토종 패션 잡화 브랜드 ‘찰스앤키스’, 올 1월 쿠팡에 인수된 명품 플랫폼 ‘파페치’ 등도 가상자산 결제 메뉴를 추가했다.
서비스 초기인 만큼 문제점도 많았다. 그랩처럼 소액을 결제하면서 가스비(네트워크 수수료)와 거래소 수수료까지 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듯했다. 홍콩의 ‘가상자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마찬가지였다. 500홍콩달러(약 63.95미국달러, 8만 8000원)를 ATM에 입금하자 5분도 안 돼 59달러 상당의 테더(USDT)가 가상자산 지갑 앱으로 들어왔다. USDT는 달러와 1대1로 가치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수수료율을 계산해보니 약 7.7%로 일반적인 가상자산거래소보다 비쌌다.
그러나 가상자산 결제가 확산될수록 점차 불편함이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랩·파페치 등에 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가상자산 결제 기업 트리플에이의 에릭 바비어 최고경영자(CEO)는 “가상자산 결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잠재력을 본 현지 기업들은 가상자산 기업간거래(B2B) 솔루션을 개발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데 한창이다. 인접한 태국에서는 현지 최상위권 금융지주사인 SCBX가 가상자산공개(ICO) 종합 플랫폼인 ‘토큰엑스’를 설립했다.
시장과 산업이 자라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정부의 역할도 눈에 띄었다. 홍콩에서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자산 수탁을 맡고 있는 OSL의 개리 시우 전무는 “수년간 금융 당국과 기업이 협력한 덕분에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을 ‘투기자산’으로 치부하는 국내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 싱가포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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