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2기 행정부가 출범한 후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솔라나(SOL)와 리플(XRP)이 트럼프 효과를 등에 업고 부상한 반면 이더리움(ETH)은 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가상자산 2인자’ 자리의 세대교체 가능성도 제기된다.
7일 블록체인 데이터 기업 디파이라마에 따르면 이더리움의 총예치자산(TVL)은 전날 기준 577억 달러(약 83조 4053억 원)로 한 달 전 대비 17% 이상 감소했다. TVL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에 예치된 전체 자산의 규모를 나타내는 지표다. 반면 솔라나의 TVL은 같은 기간 1%가량 증가해 뚜렷한 대비를 나타냈다. TVL 감소는 이더리움 기반 서비스의 이용 부진과 네트워크 활성도 저하를 의미한다.
이더리움의 부진과 솔라나의 약진은 거래량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4일 가상자산 시장 데이터 제공 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솔라나 기반 탈중앙화거래소(DEX)의 24시간 거래량은 56억 달러(약 8조 948억 원)로, 38억 달러(약 5조 5461억 원)에 그친 이더리움 기반 DEX 거래량보다 1.5배가량 많았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솔라나 생태계에서 사용되는 스테이블코인의 공급량도 지난 한 달 동안 2배 이상 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전했다.
솔라나의 급성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밈코인 오피셜트럼프 발행이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피셜트럼프를 발행할 블록체인으로 이더리움이 아닌 솔라나를 채택하면서 신규 투자자들이 솔라나 생태계로 몰려들었다는 분석이다. 블록체인 정보 분석 기업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오피셜트럼프 보유자의 46.5%가 밈코인 구매를 위해 처음으로 솔라나 지갑을 생성한 신규 투자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대형 블록체인 프로젝트인 리플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성공하며 약진하고 있다. 리플은 올 1월 2020년 이후로 약 5년 만에 가상자산 시가총액 3위를 탈환했다. 지난해부터 미국 블록체인 업계 로비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리플이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트럼프 취임식에 500만 달러(약 72억 원) 상당의 리플을 후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증권법 위반 혐의로 제기한 법적 분쟁이 리플의 ‘적극적인’ 행보로 인해 일단락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SEC는 리플을 상대로 제기한 미등록 증권 판매 소송에서 지난해 8월 1심 일부 패소 후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 SEC 리스크 해소 기대감으로 리플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추진하는 자산운용사도 7곳으로 늘었다. 기업들도 리플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고 있다. 나스닥 상장사 워크소프트는 현금 보유액의 최대 10%를 비트코인과 리플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긍정적 흐름을 반영하듯 모니카 롱 리플 사장은 지난달 28일 리플 커뮤니티 데이에서 “2025년은 리플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미국 규제 장벽이 완화되는 만큼 금융기관과의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솔라나와 리플의 급부상으로 이더리움 진영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비탈릭 부테린이 발표한 이더리움 재단 구조 개편 계획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어나며 주요 인력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더리움을 떠난 코어 개발자 에릭 코너는 자신의 엑스(X) 계정을 통해 “솔라나는 워싱턴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더리움에는 이런 역할을 할 인물이 부족하다”면서 “이더리움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이 뒤로 물러나면서 이더리움 재단이 불투명해지고 커뮤니티와 단절이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이더리움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이더리움이 핵심 경쟁력을 상실했다”며 “더 이상 ‘킬러 디앱’의 허브이자 개발자 중심 블록체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하고자 이더리움 재단은 3월 ‘펙트라 하드포크’로 반전을 노린다. 이더리움 사상 최대 규모인 이번 업그레이드는 데이터 저장공간 ‘블롭’ 확대와 스테이킹(예치) 한도 상향 등 네트워크 사용성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가상자산 애널리스트 가이 터너는 “펙트라 업그레이드가 이더리움 가격 상승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도 이더리움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감지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트럼프 일가와 연관된 이더리움 기반 디파이 프로토콜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의 대규모 매집이다.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은 현재 9개 지갑에 4억 달러(약 5805억 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분산해 보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이더리움으로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더리움 추가 매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차남 에릭 트럼프는 4일 “지금이 이더리움 매수 적기”라며 직접 이더리움 투자를 추천하기도 했다.
- 김정우 기자
- woo@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