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민주당 디지털자산위원장)이 이달 10일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에 대한 업종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법안대로라면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대형 정보기술(IT) 업체와 핀테크 사업자들의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5억 원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한 국내 법인이라면 누구든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다른 정무위 의원들이 다음 달 발의를 준비 중인 ‘디지털 자산혁신법’은 자기자본 기준을 10억 원으로 높일 예정이지만 여전히 비은행사들의 발행을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일찌감치 카카오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뛰어들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많았다. 특히 카카오의 금융계열사인 카카오페이는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과 연계해 2000만 명이 넘는 월간활성이용자(MAU)를 보유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있어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춘 업체라는 평가가 나온다.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발행 뒤 이를 유통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탄탄한 사용자 기반이 핵심이다. 카카오페이가 지난해 말 기준 113만 개 이상의 결제 가맹점을 보유한 것도 실사용 기반 확보 측면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카카오 원화 코인’이 나오면 이를 이용할 고객도, 사용처도 풍부하다는 뜻이다.
이미 해외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세계 최대 온라인 결제 서비스 업체인 미국의 페이팔은 2023년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페이팔유에스디(PYUSD)’를 발행하고 이를 자사 결제 수단으로 지원하고 있다. PYUSD 보유자에 연 3.7%의 이자를 약속하면서 스테이블코인 시장점유율을 더 끌어올리고 있다. PYUSD의 발행량은 현재 약 9억 4723만 달러(1조 2946억 원)로 전체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7위 수준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카카오페이 주가는 연일 고공 행진 중이다. 20일 카카오페이는 전 거래일 대비 29.85% 상승한 7만 96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카카오페이는 앞서 9일에도 29.9% 급등해 상한가를 기록한 바 있다.
금융계와 IT 업계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뛰어드는 곳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사단법인 오픈블록체인·DID협회는 4월 KB국민·신한·우리·NH농협·IBK기업·Sh수협과 금융결제원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신설했다. 은행 중심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것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와 iM뱅크도 참여하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게임사 넥써쓰가 1호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공식 선언했다. 장현국 넥써쓰 대표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가장 먼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같이 밝혔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시행되는 즉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x’를 출시해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다.
장 대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원화 기반은 아직 아무도 앞서 나가지 않은 출발선에 서 있는 상황”이라며 “어떤 기업이 참전할지 알 수 없지만 겁 없이 선제적으로 도전해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업체들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 발행까지는 1~2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정치권과 금융 당국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규진 타이거리서치 대표는 “실제 사업자들이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시기는 빠르면 내년 상반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