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론 머스크.’
블록체인 업계에서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장현국(50·사진) 넥써쓰 대표에게 붙는 별칭 중 하나다. 선구자이자 이슈 메이커라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일론 머스크와 닮아 있다.
장 대표는 30년간 게임 업계에 몸담으며 블록체인 게임으로 새로운 산업 동력을 입증해온 인물이다. 부분 유료화 PC 게임이 주류이던 시절 장 대표가 선보인 블록체인 게임의 흥행은 글로벌 시장에서 K게임의 판도를 새롭게 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선구자답게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위메이드 시절 가상화폐 ‘위믹스(WEMIX)’ 유통량 공시 문제가 불거지며 시세조종 혐의로 1년 가까이 재판을 받았고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 1월 게임 회사 넥써쓰의 대표이자 최대주주로 복귀한 그는 다시 블록체인 게임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취임 9개월 만에 메인넷·토큰·게임을 연달아 출시하며 평범했던 넥써쓰를 단숨에 블록체인 게임사로 탈바꿈시켰다. 장 대표 취임 전까지 10년 연속으로 이어지던 적자 흐름도 끊어내 회사는 두 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장 대표의 집념이 있다. 9월 29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넥써쓰 본사에서 만난 그는 “블록체인 게임은 제 소명”이라고 단언하며 위믹스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산업 부흥을 이끌겠다고 자신했다.
그는 “위믹스 때는 자원도 많고 시장 분위기 역시 좋다 보니 너무 넓게 벌려 오히려 블록체인과 게임의 결합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넥써쓰에서는 자원이 충분하더라도 게임에서 압도적 1등이 될 때까지 다른 애플리케이션에는 손대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넥써쓰는 게임 플랫폼과 소프트웨어개발도구(SDK) 구축에 그쳤던 위믹스와 달리 각 게임의 크로쓰 연동 작업을 돕는 ‘크로쓰 램프’ 기능과 인공지능(AI) 기반 개발 어시스턴트 등 게임 중심의 플랫폼 구성 요소를 빠르게 갖춰가며 이전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같은 준비 끝에 장 대표가 내놓은 승부수는 블록체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로한2 글로벌’이다. 9월 30일 블록체인 게임이 금지된 한국·중국 등을 제외한 전 세계 170개국에 동시 출시되며 글로벌 흥행 시험대에 올랐다. 사전 성적표는 긍정적이다. 출시 전 한 달간 진행된 사전예약에 324만 명이 몰리며 흥행 기대감을 키웠다. 특히 위메이드 대표 시절 국내 게임사 최초로 블록체인 게임 사업을 진두지휘해 ‘미르4’와 ‘나이트 크로우’를 연속 흥행시킨 장 대표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장 대표는 로한2의 가장 큰 차별점으로 ‘몰입형 토큰 경제구조(토크노믹스)’를 꼽았다. 기존 게임 결제 재화인 ‘루비(RUBY)’를 토큰화해 게임 매출과 이용자의 경제활동이 함께 움직이도록 설계한 것이 핵심이다. 이용자는 몬스터 사냥이나 퀘스트 보상으로 얻는 재화 ‘크론(CRON)’과 아이템을 루비를 통해 사고팔 수 있다. 루비를 넥써쓰의 블록체인 ‘크로쓰’ 자체 토큰인 크로쓰(CROSS)로 교환해 코인원·코빗 등 가상화폐거래소에서 현금화할 수도 있다.
게임 내 아이템 거래소 또한 모두 대체불가토큰(NFT) 거래소로 통합했다. 기존처럼 별도의 외부 NFT 마켓을 거치지 않고 게임 안에서 곧바로 NFT 형태의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는 구조다. 이용자 간 활발한 게임 내 아이템 거래와 통상 외부에서 이뤄지던 NFT 거래가 완전히 통합되면서 게임 아이템은 더욱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는 “재미있는 게임에 더 나은 토크노믹스가 붙으면 성공한다는 것을 미르4와 나이트 크로우에서 이미 입증했다”며 “이번 로한2의 토크노믹스도 기존에 없던 방식으로 개선했고 심지어 이 역시 시장의 초기 모델일 뿐 블록체인 게임은 앞으로 더 발전 여지가 많다”고 자신했다.
그가 구상하는 차세대 블록체인 게임 토크노믹스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법정통화와 가치가 1대1로 연동돼 가격 변동성이 적은 스테이블코인은 게임 경제를 현실 경제와 연결하는 교두보다. 그는 “게임 토크노믹스에는 게임 토큰과 네이티브 토큰, 스테이블코인 세 가지 축이 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넥써쓰의 블록체인 게임 체인 크로쓰에 대입하면 루비(게임 토큰)–크로쓰(네이티브 토큰)–스테이블코인으로 이어지는 삼각 구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넥써쓰는 10월 중순 크로쓰 체인 위에 출시되는 ‘크로쓰 샵’의 결제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한다. 크로쓰 샵은 최근 게임 업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웹샵’ 솔루션이다. 웹샵은 게임사가 앱스토어 대신 자체 웹페이지에서 아이템을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장 대표는 “게임사들이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내야 하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달리 크로쓰 샵은 스테이블코인으로 0% 수수료 결제를 제공해 크로쓰 체인에 게임을 올리는 게임사들의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크로쓰 샵의 국내 결제 수단으로 쓰일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직접 발행할 계획이다. 국내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통과되는 즉시 다른 업체들보다 먼저 ‘1호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원화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남미 등 신흥 국가 통화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발행도 앞두고 있다. 현재 넥써쓰는 필리핀과 브라질·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 크로쓰 이용자가 많은 12개 국가를 선정해 이들 통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스트 발행을 진행한 상태다. 이르면 다음 주 공식 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각국 통화를 직접 담보로 관리하는 데 따른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비트코인(BTC) 200% 담보 구조로 설계됐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 등의 경우 세계 최대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체 체인인 BNB체인과의 연동을 통해 지원한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발행하기보다는 전용 체인을 출시해 유통의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선언한 국내 경쟁사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장 대표는 직접 발행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선은 우리 생태계에서 필요로 하는 스테이블코인을 적절하게 공급해줄 곳이 없다”며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달러화 일변도이기 때문에 원화와 신흥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돈이 많은 회사가 이기는 사업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수요를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라며 “게임을 비롯한 실제 결제·송금 수요를 넥써쓰가 창출해내겠다”고 강조했다.
넥써쓰의 또 다른 성장 전략은 블록체인 합병이다. 크로쓰 체인과 다른 블록체인을 합쳐 유동성을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2021년 국내 게임사 사이에서 블록체인 게임 열풍이 불던 당시 우후죽순 생겨난 게임 체인들이 우선적인 합병 대상이다. 장 대표는 “현재 대부분의 게임사 블록체인은 처치 곤란한 상태에 놓여 있다”며 “탈중앙화 특성상 서버가 없고 이용자 지갑이 살아 있으면 체인이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운영을 접을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의 최종 목표는 크로쓰 체인을 전 세계 상업용 블록체인 가운데 1위로 올려세우는 것이다. 그는 “가치 저장 수단의 비트코인과 인터넷과 같은 역할의 이더리움을 제외한 상업용 블록체인 중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것이 중장기적인 목표”라며 “듣기에는 허무맹랑해 보일 수 있지만 지난해 2월 가상화폐 시장이 한참 좋지 않을 때도 위믹스의 총예치자산(TVL)을 전 세계 12위 규모까지 올린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역량을 충분히 집중한다면 크로쓰를 상위 5위권, 더 나아가 1위로 올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가 매년 수십조 원의 수익을 올리듯 게임 플랫폼의 경제적 가치는 압도적”이라며 “게임에서 1위를 차지해 스테이블코인 수요를 모은 뒤 범용 블록체인으로 확장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 김정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