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가상통화·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정책이 혼선에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11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는 도박과 비슷하다”며 “거래금지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후 논란이 커지자, 지난 15일 정기준 국무조정실 경제조정실장이 부랴부랴 “거래소 폐쇄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개발은 지원하고 육성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1년째 ‘가상화폐 규제’와 ‘블록체인 육성’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갈피를 못 잡고 횡설수설 중이다. ‘거래소 폐쇄’에서 ‘자금줄 옥죄기’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거래금지’는 수면 밑으로 가라 앉은 듯 보이지만 불씨는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가상화폐는 박 장관이 말한 것처럼 ‘가상징표라고 부르고, 정부가 나서서 엄단해야 할 정도의 심각한 도박’일까? 가상화폐 거래소는 ‘도박장’을 운영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한발 물러서서 도박은 맞지만, 아직 재산으로 정의도 안 됐고 개인이 자기 책임하에 거래하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규제할 정도는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상품권처럼 실생활에서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 결제대금으로 낼 수 있는 가상화폐에 대한 거래는 도박이 아니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모든 가상화폐 거래는 주식처럼 도박이 아닌 투자라고 봐야 할까?
일단 가상화폐 거래가 도박인지 아닌지, 그리고 현재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300만 명의 국민들이 도박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려면 그 기준이 되는 ‘도박죄’부터 살펴봐야 한다.
도박죄는 형법 제246조에 규정돼 있다. 도박죄는 “재물로써 도박을 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로 국민의 근로 정신과 공공의 미풍양속을 그 보호법익으로 한다”고 명시해 놨다. 재물을 걸고 도박을 하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상습적으로 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물론 일시적 오락이라면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도박죄의 핵심은 ‘재물’과 ‘도박’이다.
여기서 ‘재물’은 가격과 교환가치 여부를 떠나 재산상의 이익만 있으면 되고 당장 주지 않더라도 “주겠다”는 약속만 해도 해당된다. 항상 상대방, 공범이 존재한다.
‘도박’은 우연에 의해 재물의 득실이 정해져야 하고, 승패 결정에 상당한 기능이 관계된다 해도 다소의 우연성에 지배를 받으면 충분하다. 그래서 대법원은 “내기 골프도 도박”이라고 판시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처럼 “가상화폐 거래가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가상화폐가 재물이고, 우연에 의해 수익과 손해가 결정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눈을 돌려 주식시장을 살펴보자.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의 주가는 회사의 가치에 기반해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주가는 회사의 가치 외에 예상치 못한 다양한 외부 변수에 의해 폭등과 폭락을 반복한다. 전 세계 주식시장을 패닉에 빠뜨린 9.11 테러나 북한의 핵실험, 미국발 금융위기(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이 대표적 사례다. 회사 가치와 직접 관련도 없고 예측도 불가능한 많은 외부적 우연에 의해 주가가 급등락한다.
그래서 “예측 불가능한 주식시장의 위험을 줄이겠다”(리스크 헷징)며 주가지수 및 종목별로 선물과 옵션 등 파생상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식시장의 위험성과 우연성을 극대화한 투기상품으로 파생상품이 활용된다.
결국 주식이나 파생상품 투자도 상당 부분 우연에 의해 수익과 손해가 결정되고, 그런 측면에서 ‘도박죄’에 해당된다. 그러나 ‘도박죄’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자본시장법에 ‘구멍’을 뚫어 놨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자가 금융투자업을 영위하는 경우에는 형법상의 도박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예외를 뒀다. 금융투자업은 투자매매업, 투자중개업, 집합투자업, 투자자문업, 투자일임업, 신탁업 등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업’이라는 말에 담긴 뜻처럼 “이익을 목적으로 계속적 또는 반복적 방법으로 거래하는 것”을 말한다.
뒤집어 보면 “증권이나 파생상품을 취급하는 금융투자업자는 우연성에 의해 손실이나 이익을 거둘 가능성이 있고 그로 인해 도박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금융투자상품의 거래가 위축될 수 있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 법에 예외를 인정하자”는 뜻이다.
또 이 규정은 금융투자업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단순히 주식을 보유했거나 거래하는 개인은 대상이 아니다. 결국 도박죄가 있고, 그 도박죄의 예외에 금융투자업자를 둔 것은 주식투자, 파생상품을 투자하는 개인에 대해선 도박죄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증권이나 파생상품이 투자 위험성이 크고 도박의 성격도 있지만 개인이 투자하는 것까지 도박죄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판단이 담긴 셈이다.
이제 주식과 가상화폐를 비교해보자. 물론 주식과 가상화폐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주식에서 강조하는 ‘기업가치’가 가상화폐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정부규제 발표로 가상화폐가 급락하는 국면에서 리플이나 이오스 등 개별 가상화폐별로 등락이 엇갈린 것은 가상화폐별로 다른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가상화폐 문제는 ‘투자냐 투기냐’의 범주를 벗어났다.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와 청년실업을 논하는 거대담론으로 커졌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비난을 듣는 ‘문제아’가 됐고, 중앙일간지의 헤드라인까지 차지하면서 ‘4차 산업혁명’, ‘창업 생태계 조성’에 대한 논의는 뒤로 숨었다.
‘가상화폐 거래중단 논란’으로 당분간 블록체인 산업은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힘들 듯 하다. 정부가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블록체인 육성’을 말하지만, 정부의 바램과 달리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투기 규제’는 국민이 정부에게 부여한 무거운 책무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책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 맞다.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한 적절하고도 단호한 조치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해 ‘도박’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 하는 검찰의 매서운 눈초리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벼 사이에서 자라는 잡초를 뽑아 벼가 튼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때다. 벼를 믿고 놔두면 유기농 벼로 가격을 높게 쳐서 받을 수 있다. 정 불안하면 손수 잡초를 뽑든지 잡초만 제거하는 제초제를 써야 한다. 비 온 뒤 잡초가 무성하다고 벼까지 뽑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정부가 정책적 혜안을 찾지 못하면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는 길로 가야 한다. 다행히 굳은 땅에서도 살아 남아 뿌리를 내리고 돋아나는 새싹 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산업을 지탱할 유망한 블록체인 기업들이 더 큰 글로벌 시장을 향해 묵묵히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부처간 입장 조율에 나선 정부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묘책을 마련해 주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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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승호 기자
- derrid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