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지(No Touch).’
조선인 광부들이 금(金)을 캐오자 외국인 광산주가 “손대지 말라”고 말한 것을 ‘금’이라고 오해해서 생겨난 표현이라고 한다. 선우 휘의 장편소설 ‘노다지’에서 금을 노다지로 부르게 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진짜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력이 추가된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채굴과 관련된 구한말에 나오는 실존하는 키워드는 맞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수메르의 탄생신화에도 채굴 얘기가 나온다. 인기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고고학자이자 저술가인 제카리아 시친의 ‘지구연대기’에 의하면 태초에 지구에는 신들만 있었다. 그런데 금을 채굴하는 임무를 맡은 신들이 고된 광산생활에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금광에서 일하는 노예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게 현재의 인류라는 것이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인데, “반만년 전에 무슨 채굴이냐”고 생각할 독자들도 있을 듯 하다. 신화적인 내용이기도 하니 믿고 안 믿고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황금 투구가 발견됐고 수메르 못지 않은 고대 문명인 이집트의 유물에도 금 장식이 매우 많았다.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실과 귀족들의 보물들에 금장식이 많은 것을 보면 금과 인류의 인연이 그리 짧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지구 상에 존재하는 금속 가운데 실처럼 가늘게 늘어나는 성질인 연성(延性)과 압력을 가해 누를 때 얇게 펴지는 성질인 전성(展性)이 가장 뛰어난 금속이 금(Gold)이다. 물질적으로 무거운 성질로 녹이 슬거나 탈색되지 않고 연하고 무른 특성으로 인해 불에 쉽게 녹아 가공이 쉽다. 또 전기가 통하는 성질인 전도성도 좋아 산업적 활용도 역시 매우 높다는 장점을 가졌다. 귀금속 장식품으로서의 가치와 함께 활용도 또한 높으니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어색하지 않기는 하다.
이렇듯 귀중하고 화려하며 활용도가 높은 금을 보관하던 곳에서 발행한 금 보관증은 근대적 종이 화폐의 시초가 됐다고 한다. 17세기 영국의 상인들은 금 세공업자에게 금을 맡기고 보관증서를 받은 후 실제 금을 찾아서 물건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금 보관증을 가지고 물건의 대가를 지급했다. 그러면서 금 보관증이 화폐의 특성인 ‘교환의 수단’, ‘가치의 표시’, ‘가치의 저장’, ‘지불의 수단’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금본위제(金本位制)와 태환화폐(兌換貨幣)라는 제도다. 실제로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기 전까지 미국의 달러는 은행에서 금화로 바꿔주는 화폐였다. 그러다 지금은 불태환화폐(不兌換貨幣)로 국가에서 가치를 보증하는 법정화폐 또는 신용화폐가 됐다.
중앙정부는 화폐를 주조하는 곳(보통은 중앙은행이 이 역할을 하고 우리나라는 한국은행이 그 역할을 한다)에서 만든 종이 지폐를 보증하고 생산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치로 시장에 유통 시킨다. 보기에 따라선 정부가 폭리를 취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5만 원권의 생산원가는 액면가의 1~2% 수준이다. 국가에서 보증한 가치인 액면가에서 제조비용을 뺀 차익을 시뇨리지(Seigniorage·화폐주조차익)라고 부른다. 프랑스어인 시뇨리지는 중세 유럽의 봉건 영주가 불순물을 섞은 금화를 만들면서 얻은 차익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얻은 시뇨리지는 국가에 귀속돼 정부 재정으로 사용되는 구조다. 세금 대신 쓰이는 셈인데 그 차익이 정당한지,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
사실 정부가 발행한 신용화폐가 온전히 그 가치를 갖고 있는지, 보장해 주는지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가치가 폭락하기 때문이다. 짐바브웨에서는 2008년 100조 달러 지폐가 발행됐다. 100조는 0이 무려 14개에 이르는 큰 숫자지만, 짐바브웨 100조 달러는 약 400원으로 시장에서 계란 3개 살 정도 가치 밖에 안 된다.
우리는 실물 경제 사회에서 확보하고자 하는 물건과 소유하고 있는 가치를 교환할 때, 지폐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지폐는 현대 법정화폐(또는 신용화폐) 시대가 제공하는 아주 강력한 중개인이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는 지폐라는 중개수단에 익숙해져 있고, 국가는 중개수단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실제 한국은행에서는 시뇨리지가 가장 적은(오히려 마이너스인) 동전을 2020년까지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거래 후 잔액을 선불전자지급수단에 적립해 동전이 필요 없도록 함으로써 동전 제조비용과 유지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것이다. 동전이 성공한 다음에는 종이지폐를 없애고 전자화된 화폐로 대체하는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통해 익명의 개발자 집단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중앙화된 금융시스템 대신에 분권화된 금융 시스템을 제안했다. 중개인 없이 신뢰 거래를 가능케 하는 블록체인 개념을 내놓은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을 위시한 암호화폐(가상화폐) 광풍이 불면서, 전자화된 화폐 사회는 잠시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꿈꾸었던 탈중앙화 사회는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블록체인의 열기를 틈타 존재하지도 않는 사이버 골드라는 개념을 들먹이며 실현 불가능한 사업을 암호화폐로 포장한 짝퉁을 골라서 걷어내야 한다. 동시에 화폐 본연의 순기능과 경제 활동의 근간을 기초로 하고 있는 실질적인 토큰 이코노미를 지향하는 모델은 잘 평가해서 육성해야 한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유한한 자원인 금(Gold)과 같고, 기축통화(key currency)와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암호화폐가 실제 우수한 산업재이며, 귀금속의 역할을 하고 있는 실물 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찾아야 한다. 그래서 블록체인이 갖게 될 무궁무진한 미래 산업의 잠재력을 찾고, 그 잠재력이 실제 존재하는 경제 활동으로 잘 이어질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이끌어서 건전한 블록체인 생태계가 만개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우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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