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블록체인 시장은 태동기입니다. 인터넷 혁명기에 비유하면 넷스케이프(NetScape)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기반기술이 막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블록체인 산업은 불확실성도 크지만 그만큼 무한한 잠재력도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정부에서 주관하는 ‘K-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사업을 계기로 블록체인 스타트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호창성(43·사진) 더벤처스 대표는 실리콘벨리에서 창업에 성공한 뒤 스타트업 투자사를 설립한 드문 경력의 소유자다. 2007년엔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인 ‘비키(VIKI)’를 실리콘벨리에서 창업했고, 2013년엔 라쿠텐에 이 회사를 2억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2014년부터는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인 ‘더벤처스’를 설립했다. 같이 비키를 창업했던 문지원 대표와 함께 ‘빙글(Vingle)’이란 인터넷 커뮤니티 스타트업도 운영하고 있다.
호 대표는 최근 ‘블록버스터즈’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17일 서울 서초구 더벤처스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을 만나 “이 프로젝트를 통해 비록 실패 확률이 높을지라도 일단 성공하면 거대한 시장을 일궈낼 수 있는 블록체인 사업자들을 키워내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번 달 말까지 참가팀을 모집하는 ‘블록버스터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사업인 ‘K-글로벌 엑셀러레이터’의 일환으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예비창업자와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역량강화를 돕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는 블록체인을 ‘의사결정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 호 대표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도 어떤 장부가 조작된 거고 진짜인지 수만 명의 노드(nod·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개인)가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라며 “이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기제인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여러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각 스타트업이 설정한 ‘거버넌스’ 각각마다 다양한 형태의 시장을 창출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블록체인 산업에서 매력을 느낀 이유다. 호 대표 본인도 ‘빙글’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그는 “빙글은 커뮤니티 서비스기 때문에 유저간의 자율적인 자치가 핵심”이라며 “이런 점에서 빙글의 사업과 블록체인 사업의 철학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가 ‘K-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사업에 참여한 데엔 실리콘벨리에서의 창업 경험도 한몫했다. 호 대표는 “비키를 키워나가는 데 있어 실리콘벨리와 싱가포르 등지의 벤처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은 게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됐다”며 “K-글로벌 엑셀러레이터 사업의 취지가 스타트업들에게 글로벌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데에 있었기에 더더욱 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 맥락에서 호 대표는 한국도 미국처럼 다양한 투자자가 활동할 수 있어야 창업생태계가 활성화될 수 있을 거라고 역설했다. 호 대표는 “제가 비키를 창업하려고 했을 때 한국 투자사 중엔 저희 사업 모델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곳이 없었다”며 “하지만 미국에선 ‘당장은 비즈니스 모델이 없어 보여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나중에 수익은 알아서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나마 제가 창업할 때에 비하면 지금은 한국의 창업 여건도 많이 좋아졌지만 앞으로 다양한 투자자가 생겨야 좋은 사업모델을 보유한 스타트업도 많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추구하는 미래상은 스타트업에 ‘가치를 더하는 투자자(Value-Add Investor)’가 되는 것이다. 호 대표는 “훌륭한 해외 투자자들이 얼마나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되는지 몸소 느꼈다”며 “수동적으로 투자해놓고 잘 되길 바라는 대신, 회사 경영이나 후속투자, 전략수립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조언함으로써 좋은 네트워크도 연결해주고 창업자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조명해줄 수 있는 투자사로 거듭나고 싶다”고 포부를 전했다.
/심우일기자 v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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