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자국 통화를 10만대 1로 액면절하하는 동시에 이를 국영 암호화폐인 ‘페트로’와 일부 연동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암호화폐와 연계해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을 통한 국가적 화폐개혁을 진행하겠다는 유례없는 계획이다.
25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 25일 현지 통화인 볼리바르의 화폐 단위에서 ‘0’을 다섯 자리 없애는 형태로 리디노메이션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리디노메이션은 화폐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둔채 액면가를 낮게 바꾸는 조치다. 인플레이션이 극심해 통용되는 화폐단위가 지나치게 커 거래 불편이 발생하거나 부정부패나 지하경제 규모가 지나치게 커 기존 화폐를 쓸모없이 만들어 이를 양성화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로 검토된다. 베네주엘라는 인플레이션 쪽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율은 올해 100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1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1920년 독일, 2,000년 짐바브웨의 초인플레이션 사태와 비슷한 수준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같은 화폐 단위 변경 계획을 밝히면서 국영 암호화폐 페트로(Petro)와의 연계 방침을 밝혔다. 그는 “다음 달부터 국영 암호화폐 페트로와 연동되는 새로운 화폐를 만져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든 국내외 경제활동에 페트로가 침투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페트로가 볼리바르와 어떤 형태로 연동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두로 대통령은 “새로운 통화는 재정 상황을 급진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며 베네수엘라의 경제적 미래는 밝다고 확신했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따르면 통화 재전환은 내달 20일에 시작된다.
페트로는 석유 자원 기반의 암호화폐다. 현재까지 알려진 페트로 총 발행량은 1억 토큰으로, 약 60억달러어치다. 지난 2월 로이터는 “1페트로의 판매 단가가 베네수엘라산 원유 1배럴 가격을 기준으로 한 60달러”라며 “이후 화폐 가치는 유가 시장 변동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페트로와 베네주엘라 법정화폐의 연동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페트로 자체가 신뢰받지 못하는 암호화폐라는 논리다. 워싱턴 포스트는 같은 날 “커뮤니티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페트로는 사실상 실패한 암호화폐”라며 “개발 과정에서 수많은 의혹을 샀기 때문에 현재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태”라고 전했다. 매체는 페트로가 실제 거래 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유동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현존하는 통화라고 부르기도 어렵다”며 “페트로에 법정화폐를 연동하는 계획은 마치 한센병으로 죽어가는 환자에게 (항생제가 아닌) 균을 주입하는 동종요법을 가하는 격”이라는 기고문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재무부가 지난해부터 페트로를 구매할 경우 금융제재를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기 때문에 페트로 투자자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페트로 발행 당시 경제학자들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페트로 사전판매 당시 초기투자자와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페트로가 어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작동할 지도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마두로 대통령은 페트로에 대한 자신감을 표해왔다. 그는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암호화폐가 태어났다”며 “페트로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독립성과 경제 주권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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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지기자 yjk@decenter.kr
- 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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