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현재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블록체인 프로젝트 수는 약 1,981개에 이른다. 이들 중 약 40%가 영미권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외 대다수 프로젝트들은 중국에 기반 하고 있다. 지난해 부터 ICO(암호화폐공개)가 국내에서는 전면적으로 금지된 만큼 국내에서 시작되는 프로젝트는 전체 10%에 미치지 못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하는 국내 기업들 또한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국내 기반 프로젝트의 비중은 크지 않은 반면 투자나 개별 프로젝트의 생태계를 키우는 커뮤니티 빌딩에 있어서는 한국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거세게 불었던 지난해 12월 세계 암호화폐 거래액 121억4,000만 달러(약 13조 5,543억 원) 가운데 원화 거래는 36억 달러(약 4조 194억 원)로 전체의 30%에 달했다. 물론 지금 원화 거래의 비중은 예전만 못하지만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언제든 다시 시장이 커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한국은 커뮤니티를 활성화해야 할 주요 국가다.
이 거대한 시장에서 국외의 프로젝트들과 한국 투자자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 프로젝트 커뮤니티 매니저’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해외 암호화폐 프로젝트들이 속속 커뮤니티를 넓혀가기 시작하면서 커뮤니티 매니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국에 기반을 두지 않은 중국, 미국 프로젝트들의 팀이 현지 팀을 꾸리기 까지는 어려운 상태에서 한국 내에 프로젝트의 소식을 알리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을 담당할 커뮤니티 매니저를 뽑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단독, 혹은 5명 이내의 팀으로 활동하며 국외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인 밋업을 열거나 국내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팀을 대표해 참가하기도 한다.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를 이해하고 커뮤니티를 이끌기 위해서 대부분의 팀은 현지인을 고용한다. 미국 시애틀에 기반을 둔 마이크로 테스크 플랫폼 블록체인 스톰의 김진우 한국 커뮤니티 매니저는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카카오톡과 위챗 등 자국어를 사용하는 자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며 “이 때문에 보통 현지의 상황을 잘 아는 현지 사람을 커뮤니티 매니저로 고용하고 다양한 일을 요청한다”고 말한다.
이들의 역할은 해외 프로젝트 소식을 한국 커뮤니티에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내 상황을 거꾸로 프로젝트팀에 전하고, 이에 적절한 전략을 짜도록 돕는 일도 이들의 주요 업무다. 국내의 경우 ICO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관련 규제가 불명확한 만큼 국내에 상주하는 해외 프로젝트의 커뮤니티 매니저들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정부의 규제 상황을 모니터링 하고 시장의 상황, 그리고 커뮤니티의 동향을 파악하고 전달하고 있다.
업무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드는 일은 커뮤니티 관리다. 이는 다양한 형태다. 투자자들을 비롯한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커뮤니티 멤버들과 프로젝트팀과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물론 텔레그램등의 SNS방을 관리하거나 국내 관련 행사 등을 주관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커뮤니티 매니저들은 가장 필요한 역량으로 참여자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네트워킹 능력’과 믿음을 줄 수 있는 ‘신뢰’를 꼽는다. 김진우 매니저는 “프로젝트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만큼 잘못된 행동으로 신뢰를 잃게 되면 회복하기 어렵게 된다”며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어 능력 또한 물론 뛰어나야 한다. 외국어로 된 문서와 내용을 한국어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영어, 중국어 등 외국어 능력은 물론 모국어인 한국어의 전달 능력 또한 뛰어나야 한다고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들은 입을 모은다. 방콕에 본사를 둔 블록체인 스테이킹 기업 비트피시의 김은별 커뮤니티 매니저 또한 “중국 심천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며 “언어적 장벽은 커뮤니티 매니저들이 힘들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작은 번역 실수 하나에도 오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번역 하나 하나에 공을 들이고 접근한다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들의 장이다.
번역에 있어서 문화적 장벽 또한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중국과 미국 등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이 중에서도 절반은 영미권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프로젝트의 소식 등을 전하거나 교류를 할 때 지리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리콘밸리에서 부터 시작된 미국의 블록체인 기반 공유경제 플랫폼 오리진 프로토콜의 한국 담당을 맡고 있는 최소영 커뮤니티 매니저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어 자사 서비스의 업데이트 소식과 이야기 등이 주로 영문으로 작성된다”며 “국내 커뮤니티 분들에게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고 싶지만, 번역 등의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고, 지리적 차이와 여건 등으로 인해 이해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존재하기도 한다”고 답했다.
기술에 대한 이해도 필수다. 이에 문과 출신의 커뮤니티 매니저들은 기술 파악과 전달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한 국내 커뮤니티 매니저 또한 “문과생이기 때문에 기술적인 부분에 이해도가 높지 않아 개발자들의 언어를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울 때 힘든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기술 번역은 더욱 곤란한 경우가 있다. ‘스마트계약’, ‘채굴’ 등 블록체인과 관련된 새로운 용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이들을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 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이며 사전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아 난관을 겪는다고 말한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카이버 네트워크의 김흥범 매니저는 이와 관련해 “잘못된 백서 번역의 예를 보면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를 ‘현명한 계약’이라고 바꿔놓은 경우도 있다”며 “메세지를 로컬라이징(현지화)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커뮤니티 매니저들이 스스로 블록체인에 대해 관심이 있고 지식도 어느정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적 장벽과 기술적 지식에 대한 접근 외에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인 만큼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충 또한 남다르다. 특히 투자와 관련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작은 소식에도 커뮤니티가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대처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김진우 매니저는 “올 초 장이 무섭게 가라앉을 때 커뮤니티 채널에 아침 인사를 전하기도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하는 일은 항상 보람 또한 따른다. 김진우 매니저는 “몇 주간 준비한 밋업을 서울에서 개최했을 때 부산에서까지 올라온 커뮤니티 유저분이 항상 친절한 답변에 감사하다며 만나보고 싶었다고 악수를 청하신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최소영 매니저 또한 “비오는 금요일 밋업을 개최했을 때 연세 지긋한 투자자부터 대학생, 외국인까지 참여했하는 걸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매니저라는 직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김진우 매니저는 “대외 소통과 번역, 행사 기획과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김은별 매니저는 “커뮤니티매니저 각자에게 달렸다”며 “의사소통 기술과 멀티태스킹 능력, 언어 능력 등의 역량을 지니고 있으면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다른 직업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재연 기자 wonjaeyeon@decenter.kr
- 원재연 기자
- wonjaeyeon@decent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