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공동구매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벤처캐피털이나 고액 자산가 등 일부 투자자에게만 판매된 암호화폐를 일부 받아와 다시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공동구매’는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 메신저를 통해 이뤄진다. 이른바 공구방(공동구매를 위한 채팅방)에 들어가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최근 공구방 총판매(총판)가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공동구매 사기와 투기적 행위들에 대해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공구방의 총판인 최 씨는 지난 1일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발견됐으며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자살로 추정하고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최 씨를 통해 투자한 사람들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넥스(NEX) 등 여러 암호화폐의 공동구매를 진행해왔다. 최근엔 중국 벤처캐피털로부터 썬더(TUC)를 공동구매하는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에게 ETH로 대가를 받은 이후 TUC를 지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따로 채팅방을 열고 대응책을 논의 중이다.
◇공구 책임 소재 판가름 어려워…피해보상 어려울 수도= 국내 대형 암호화폐 공동구매 회사인 에이블록(A-Block)은 최 씨가 함께 일하던 법인이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5일 등기했고, 김승환 씨와 박주영 씨가 공동대표로 등록돼있다.
이번 사태 이후 에이블록의 김승환 대표는 공동구매 채팅방에 공지를 띄웠다. 그는 “최 씨의 사망이 자살로 추정된다”면서 “법무법인에 투자금 회수 방안에 관한 자문을 구했다”고 밝혔다. 에이블록은 법무법인 승본과 자문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상속인(고인의 부모)을 상대로 법률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민사적으로 손해배상 및 투자금 반환 청구 소송, 형사적으로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통한 조치와 그에 수반하는 여러 자산 동결 조치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씨 공구방에 대한 피해보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최씨가 에이블록의 직원이며, 에이블록이 TUC 공동구매에 직접 관여했음을 입증하면 에이블록이 피해보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조정희 세종 변호사는 “에이블록에 위임 혹은 위탁을 받고 판매했다면 에이블록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를 입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진영 정세 변호사는 “회사는 책임 범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상 암호화폐 공동구매방에선 공지에 따라 투자자들은 특정 지갑 주소로 ETH를 전송한다. 그리고 정해진 날짜에 특정 프로젝트의 토큰을 투자자에게 나눠준다. 이 과정에서 계약서 작성은 없다. 채팅방에 남겨져 있는 대화 내용이 계약을 갈음하게 된다. 조원희 디라이트 변호사는 “구두로 계약이 체결될 수 있으며, 상대방이 부인하지 않으면 효력이 있다”면서도 “부인한다면 계약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변호사는 이어 “사망 후 유족들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면 유족들에게 청구할 수는 없다”며 “ 결국 불법행위에 가담하거나 방조한 공동불법 행위자가 있는지 확인돼야 투자자들이 그나마도 청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보 비대칭…투자자가 돈 벌기 어려운 구조= 공동구매 총판이 정확히 어느 회사의 소속이며, 또 어느 정도의 권한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만 문제가 아니다.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적정한 투자가격을 추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프라이빗 세일 단계에서 암호화폐를 매입한 벤처캐피털은 상당한 프리미엄을 붙여 총판에 넘긴다. 총판은 다시 여기에 프리미엄을 더해 2차 총판에 내리고, 이 총판은 다른 모집책 혹은 일반 투자자에게 특정 암호화폐를 판다. 처음 프라이빗 세일 단계에서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또한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얼만큼의 가격이 붙었는지 최종 투자자는 알 길이 없다.
조정희 변호사는 “공동구매 시 총판에게 취득가와 판매 수수료가 각각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이는 향후 사기죄 성립 여부를 가릴 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총판이 폭리를 취했다고 하더라도 투자자가 자신을 방어하기 어렵다. 이진영 변호사는 “수익률을 보장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유사수신행위로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공동구매 대상자가 스스로 조심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이번 사건처럼 특정 개인을 믿고 공동구매에 나서야 하는 구조도 문제다. 한 명의 의사결정에 따라 모인 자금을 언제든 유용할 수 있다. 공동구매 과정에서 사기나 횡령 등이 발생해도 투자자는 실질적인 보상까지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한다.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한 대표는 “암호화폐 가격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던 때에는 공동구매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보는 사례도 있었다”면서 “이런 극소수의 사례를 듣고 고민하지 않은 채 투자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최근 이어지는 하락장에서 전문 투자자가 샀던 가격의 몇 배를 주고 투자하면서 수익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단언했다. /민서연·김연지·심두보기자 minsy@decenter.kr
- 민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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