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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넥스트]⑥지금까지 이런 화폐는 없었다! 순환을 위해선가, 축적을 위해서인가?

똘똘한 투자와 기본배당으로 노후자금을 지킬 수 있는 방법


이런 생각을 해보자. 오래 놔두면 돈이 썩는다면? 보관을 잘못해서 색이 바래거나 숫자가 희미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돈 가치가 떨어진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한결같았다. “얼른 돈을 써야지. 돈 가치가 떨어지는 데 그냥 놔둘 수 없잖아.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당장 사야지.” 이 돈을 모아 축적 수단으로 삼겠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었다.

‘돈은 왜 늙지 않을까?’ 실제로 이런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19세기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Rudolf Steiner)와 아르헨티나에서 부를 축적한 독일 경제학자 실비오 게젤(Silvio Gessel)이 그들이다. 궁금하고 이상했다. 다른 재화와 사람은 세월을 머금으면 낡거나 없어지는 데 돈만 자연법칙을 거스를뿐더러 이자가 붙고 점점 더 귀해질까? 이들은 돈과 금융 문제에 대한 시선이 동시대인들과 달랐다. 돈에 ‘사회적’ 생명을 부여했다.

그 가운데 게젤이 돈의 속성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1890년 당시 세계 최대 은행이던 ‘베어링 위기’ 때문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리먼 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세계 금융위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내놓은 것과 비슷하다) 그는 독학으로 경제학 공부에 매달려 1906년 자신만의 생각을 내놨다. “돈에도 생사가 있어야 경제가 살고 세상이 산다.” 즉 돈을 계속 갖고 있으면 가치가 떨어지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그는 화폐 발행 다음 해부터 일정 비율로 가치가 깎이는 ‘자유 화폐’를 고안했다.



‘나이 먹는 돈’(Aging money)은 소유 욕구를 줄여 돈의 축재 기능을 없애는 대신 교환 기능을 극대화하는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늙지 않는’ 돈에 대한 소유욕이 부르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었다. 특히 불황기에는 돈이 돌지 않아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증가한다. 물건은 넘치나 이를 소비하지 못하고 돈이 돌지 않아 발생했던 대공황 등의 경제위기는 돈을 축적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게젤 이론의 핵심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로 요약할 수 있다. 돈(금융)은 종종 혈액에 비유된다. 인간 몸은 혈액이 돌아야 움직이고 살아있을 수 있다. 돈도 유기체와 같은 사회와 경제 곳곳에서 펼쳐지는 활동을 돕는 혈액이다. 문제는 돈은 이를 넘어 자기 증식을 한다. 또 돈 자신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올려놓는다. 이런 가치 전도로 돈이 돌지 않아 경제는 쪼그라든다. 반면 돈이 넘쳐나게 된 부동산과 같은 투기 공간은 거품을 부풀린다. 케인스도 돈이 목적이 아닌 수단의 자리로 내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혁신적인 해법을 믿는 소수가 나타났다. 대공황기,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과감하게 자유 화폐를 도입했다. 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돈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화폐 유통속도가 빨라졌다. 경제가 돌기 시작했다. 일자리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그러나 게젤과 슈타이너의 생각은 현실에 수용되지 않았다.

보스코인 등 일부 암호화폐 설계와 내용도 게젤과 비슷한 철학과 방향성이 있다. 코인(돈)을 축적이 아닌 활용 모델, 즉 ‘생태계 유통’을 목적으로 한다. 현재 암호화폐는 구매 결제용과 투자(투기)용으로 혼용돼 있다. 결제에 쓰기 어려운 이유가 가격 등락이 심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는 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보스코인과 페이익스프레스가 협력해 선보인 ‘보스프라임’ 쇼핑몰은 이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암호화폐(보스, 페스 토큰)를 통해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고 시세 변동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암호화폐 시세가 오를 때 마일리지를 추가 제공(15일 후 시세 상승분 95%, 30일 후 상승분 90%)하는 ‘시간 차 마일리지 적립’ 제도를 도입했다.

경제는 축적이 아닌 순환이 기본이어야 한다. 위기가 오면 정부 차원에서 돈부터 푸는 이유가 그것이다. 돈이 장롱이나 부동산 등에 묶이는 ‘돈맥경화’는 악순환을 부를 뿐이다. 돈을 시중에 풀어도 쉬이 경기가 풀리지 않는 건 축적을 향한 욕망이 똬리를 틀고 돈을 다시 움켜쥐기 때문이다. ‘늙는 돈’ 이론은 널리 퍼지지 못했지만, 일부 실험은 성공했다. 특히 ‘탐욕을 배제한 시장경제’라는 평가도 받았다. 늙는 돈은 선택되지 못했지만 대신 기술로 가능한 ‘진짜’가 나타났다. 늙는 돈의 정신을 물려받은 암호화폐가 순환을 약속하고 있다. 게젤이 구상한 돈은 본질적으로 순환이 중요했다. 말인즉슨 돈 자체가 중요하지 않고 돈이 돌아가는 순환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집중했다. 중세에도 한쪽 면만 새겨진 동전을 정기적으로 수거해 화폐를 순환하는 정책이 있었다. 이 주화를 3~4년마다 수거하고 10~20% 주화 량을 줄여 새로운 주화를 발행했다. 이렇게 줄인 차액은 시민이 낸 세금으로 인정됐다. 이런 정책은 장기 관점에서 통화 가치의 안정성 유지, 무이자 대출의 가능성 등 여러 장점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돈에 대한 또 다른 상상과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케인스의 말이 옳았다. 그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마르크스보다 게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울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 그런 시대가 슬슬 오고 있다. / 최예준 보스코인 대표

심두보 기자
shim@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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