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이래저래 뜨겁다. 연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었고, 이를 반영해 정부가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하고 국회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기금 국내 주식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을 내놓고 대기업 탈법 등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예고했다.
국민연금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분명하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에서 국민연금은 마지막 보루이자 핵심 사회안전망이다. 연기금 규모가 640조 원에 달하지만,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40여 년 후 고갈을 걱정한다. 출생률 저하와 고령사회(이르면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 예상)라는 당면한 현상 때문이다. 일할 사람은 줄고 노인은 늘어나는 구조에서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기본 취지를 가진 국민연금이 빠른 속도로 소진될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하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급여와 보험료의 수지 격차가 크기 때문에, 즉 보험료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므로 기금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대통령까지 나서서 불안감 해소를 위해 국가의 지급보장 의무를 명확히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을까.
연기금 640조 원은 삼성전자를 2개 이상 살 수 있는 규모다. 이건 웃자고 하는 얘기다. 연기금 조성 주체인 국민이 투표를 통해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연기금 일부로 편입하면 어떨까. 2018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잠정 60조 원을 넘어섰고 이것을 국민에게 배당하는 상상도 해보자. 삼성전자는 국민기업으로 우뚝 서고 진짜 ‘또 하나의 가족’이 될 수 있다. 이런 상상을 작동할 순 있지만, 정부가 이를 실행하기엔 여러 면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재정적 보수주의’라는 틀이 워낙 강력하고, 투자한 주식이 망한다면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정치적 부담 또한 상당하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기관투자자들이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도록 하는 것) 발동에도 얼마나 많은 태클이 들어오는가.
그렇다면 아예 상상을 좀 더 펼쳐보자. 시민이 중요한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 있다면? 연기금 투자를 시민이 투표로 결정하고 우량 기업을 사서 이익에 따른 기본배당을 하면 어떨까.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고 경제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 기본배당으로 이런 상황을 일정 부분 해소하면 일자리 창출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 여러모로 부담을 가진 정부가 아닌 시민이 결정한다면 가능하다.
국민연금은 앞뒤 세대 간 상호부조를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애초 설계될 때는 일자리 문제가 없었고, 그것을 상정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청년이나 청소년 세대가 가질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하다. 국민연금도 자연스레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여기에 맞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여러 가지가 제시될 수 있겠지만,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블록체인도 검토해볼 수 있는 선택지다. 대규모 자원을 동원할 수 있고 투명성과 보안성을 갖춘 기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무엇보다 블록체인은 글로벌 연대가 가능하다. 실업, 일자리 창출 등과 같은 전 지구적 문제를 놓고 글로벌 펀드를 만들 수도 있다. 전 지구적으로 함께 해결하자는 공감대를 마련해 추진이 가능하다.
블록체인은 아직 초기 기술이나 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공공성을 가진 프로젝트에 어울린다.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고 조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정 권력이 조작에 나서고 사적 이익을 취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시민 입장에서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국민연금의 공공성이 무너진 것을 목격한 바 있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을 자신의 입맛대로 흔들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한 재벌 경영권 승계에 국민연금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 주인인 시민들은 자신의 노후자금이 권력자의 사익에 따라 움직인 것을 사후에 알았다.
블록체인은 이런 것을 애초 불가능하게 만든다. 규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다수가 들여다보고 있으므로 조작이 불가능하다. 시민은 자신이 선택한 투자 포트폴리오 등을 운용할 수도 있다. 정부가 나설 수 없는 사안을 시민이 대신할 수 있다. 암호화폐로 연기금을 구축하면 투자를 결정할 때 기업의 선함이나 사회적 영향력 등을 반영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이런 구조라면 기업도 고용에 힘을 더 쏟고 사회적 가치에 투자하고자 애쓸 것이다. ‘연금 사회주의’가 아닌 ‘연금 시민주권’의 등장이다.
640조 원은 보통 돈이 아니다. 대한민국 1년 예산(400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를 어떻게 쓰고 운영할 것인지 시민이 나서 민주적인 제어를 해야 한다. 연기금에 블록체인을 당장 도입할 순 없다. 초기 기술보다 검증되고 안정된 기술이 우선 되고 정책적 검증도 거쳐야 한다. 인터넷 서비스 초창기를 떠올려보자. 기업과 시장이 먼저 인터넷으로 다양한 실험과 검증을 거쳤다. 정부도 자연스레 이를 따랐다. 블록체인이라고 다를까. 암호화폐로 구축된 국민연금, 흥미롭지 않은가! 내 노후자금을 위해 투자 결정도 내가 하고 배당도 받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최예준 보스코인 대표
- 심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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