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 지배권을 확보하고, 실용화 서비스를 내놓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과 각국 정부의 지원이 소리 없는 전쟁처럼 치열하다. 암호화폐 투자 시장은 열기가 예전 같지 않지만, 세계 유수 기업들은 블록체인을 각 산업에 도입,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암호화폐는 멀리하고 블록체인 기술만 장려하는 국가가 있는가 하면, 암호화폐가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될 매개로 자리 잡은 나라도 있다. 이번 上 편에서는 각국의 블록체인 산업 현황을 정리해봤다.
미국에서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산업은 서서히 주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해부터 미국의 각 주(州)에서는 암호화폐로 납세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선거 투표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등 활용처를 늘려가고 있다. 뉴햄프셔와 오하이오주, 애리조나주 등에서는 암호화폐로 세금을 납부할 수 있다. 미국 덴버시는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투표 시스템을 활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암호화폐 시장을 대하는 월가의 태도다.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월가가 인터넷을 접했던 것처럼 결국은 암호화폐 시장에 진입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최대 금융사 JP모건은 미국 은행 최초로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겠다고 나섰다. 블록체인이 중심이 될 미래 금융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JP모건의 코인 ‘JPM코인’은 미국 달러화와 1대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 코인은 당장은 기업 고객 간 지불 수단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미국 IT 기업들의 행보 역시 주목할 만하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이 자체 암호화폐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메시징 플랫폼 왓츠앱 등 자회사로 둔 여러 소셜미디어 서비스에서 쓸 수 있는 암호화폐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IBM은 해운사 AP 몰러 머스크와 함께 물류 플랫폼을 만들고, 고객 모으기에 한창이다. 최근에는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 사용자들을 위해 시범용 보안 테스트 툴을 출시하기도 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 툴은 기업용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의 신원인증, 접근, 스마트 컨트랙트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을 해결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IDC(International Data Corporation)는 4일자(현지시간)로 발표한 ‘글로벌 상반기 블록체인 투자가이드’ 보고서에서 블록체인 관련 지출액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며 캐나다가 2022년까지 연평균 90%의 산업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고 점쳤다.
캐나다는 블록체인 기술을 여러 산업에 적용하고 있다. ‘에어캐나다’는 블록체인 스타트업과 협업해 블록체인 기반의 여행 유통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항공사는 이를 통해 여행 상품의 유통 및 판매 과정에 효율성을 더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대마초 산업에서도 블록체인은 뜨거운 감자다. 캐나다 블록체인 회사인 ‘DMG 블록체인 솔루션스’는 규제 당국과 함께 대마초 공급관리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임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한 발언은 블록체인 산업을 술렁이게 했다. 그는 “블록체인과 같은 데이터 기술의 사용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원자재 생산에서 포장과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품을 추적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의 농산물 이력을 관리하는 기술 선도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농업 부문이 이러한 기술 변화를 신속히 받아들여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맛보게 해야 한다는 것.
프랑스 마르세유 무역항은 올해 6월 블록체인 화물 운송 파일럿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파일럿은 지중해와 론강, 손강을 모두 연결하는 해상로의 운송 및 복합 수송 포워딩 작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암호화폐 사업에 대한 스위스의 세율도 매력적인 점으로 꼽힌다. 유리한 세금 환경을 찾는 창업들은 본사를 스위스에 두려고 할 정도다.
스위스 최대 증권거래소 ‘SIX 스위스 증권거래소’는 암호화폐 상장지수상품(ETP)을 상장한데 이어 디지털 거래 플랫폼 ‘SDX’와 협력해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로미오 라쉐(Romeo Lacher) 거래소 대표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초 가을께 플랫폼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부동산 거래도 핫이슈다. 최근 스위스의 블록체인 자산 거래 플랫폼 블록키모(Blockkimo)와 프로테크 기업 엘레아랩스(Elea Labs), 디지털 자산 서비스업체 스위스크립토토큰(Swiss Crypto TOkens)은 블록체인 상에서 약 300만달러 규모의 부동산 거래를 진행했다.
최근 베네수엘라의 정국 혼란이 심화하면서 베네수엘라 내 비트코인 거래량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경기침체와 더불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부의 정치적 불확실성, 볼리바르화 평가절하, 국제통화기금(IMF)의 금융지원 보류 등의 이유에서다. 마두로 정부가 콜럼비아 국경 폐쇄에 나서면서 구호 물품 반입이 사실상 금지되자 베네수엘라인들은 비트코인을 활용해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블록체인 특허에 있어 압도적이다. 지식재산권 데이터 통계 제공업체 IPR데일리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2018 글로벌 블록체인 발명특허 TOP20)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블록체인 특허를 낸 상위 20개 기업 중 15개를 차지했다. 이 순위는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전 세계에 공개된 블록체인 기술 발명 특허 신청 수량에 근거한 것이다. 중국 전자상거래 공룡 알리바바는 206개의 특허를, 차이나유니콤은 106개, 핑안보험은 84개, 텐센트는 81개의 특허를 신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기업 중에서도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활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알리바바는 자사 공급망 관리 시스템(SCM)에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10월 서비스형 블록체인 사업을 동남아시아, 미국, 유럽 등 주요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알리바바는 가짜 쌀 및 다이아몬드 상품을 걸러내기 위해 블록체인 기반의 거래 추적 앱도 활용하고 있다.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는 게임과 금융, 의료 서비스 등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최된 한 기술 컨퍼런스에서 텐센트 측 관계자는 “게임 뿐 아니라 공급망 금융 솔루션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할 것”임을 강조하며 “공급망 금융에서의 블록체인 적용은 사회적 금융 원가를 낮추고 실물 경제에 보탬이 된다”고 말했다.
일본 주요 상업 은행들의 움직임도 흥미롭다. 미즈호금융그룹은 70여개의 지방은행과 제휴하면서 ‘J코인’이라는 디지털화폐를 개발하고 있다. 미쓰비시 금융그룹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MUFG 코인 발행 준비에 한창이다. 이 그룹은 최근 미국 핀테크 기업인 ‘아카마이’와 블록체인 기반의 온라인 결제 네트워크도 개발 중이다.
다양한 산업군에서 암호화폐 실용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커머스 대기업인 라쿠텐은 이번 달 내 암호화폐 결제를 지원하는 결제앱 ‘라쿠텐 페이’를 출시할 예정이다. 일본 태양광 에너지 업체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발전소를 시범 운영 중이며, 소니와 후지쯔는 어학 증명서 위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일본 최대 포털서비스인 야후 재팬(Yahoo Japan)은 지난 6일(현지시간)부터 실시간 암호화폐 시황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김연지기자 yjk@decenter.kr
- 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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