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은 계획도시였다. 정도전은 유교 질서와 상징체계를 담아 한양도성을 설계했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는 제트기 모습이다. ‘파일럿 플랜(Pilot Plan)’이란 도시계획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시를 계획할 땐 도시설계자의 철학이 반영된다. 문영훈 논스(nonce) 대표는 “블록체인을 만드는 것도 도시를 설계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지난 22일 역삼동 블록체인 코워킹 공간 논스에서 진행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개발자도 자신의 결과물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며 “좋은 블록체인을 만들려면 ‘정치 개발자’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리눅스(Linux, 오픈 소스 개발의 표본으로 다중 사용자 다중 작업, 다중 스레드를 지원하는 네트워크 운영체제)와 같은 오픈소스는 있었다”면서도 “그러나 블록체인이 과거 오픈소스와 다른 점은 돈이 연관돼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술적 변화를 추진하는 데도 돈이 관련돼 있기 때문에 좀 더 정치적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표는 비트코인(Bitcoin)의 블록 사이즈 문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블록 사이즈를 정하는 문제는 순수하게 기술적인 결정이 아니다”라며 “기술적 결정을 내릴 때도 화폐에 대한 기본적 입장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 이더리움 DAO 해킹 사태도 비슷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문영훈 대표는 “DAO 해킹 사태를 보면 어떤 게 기술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였다”면서 “정치적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이 커뮤니티가 더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DAO 해킹 사태 이후 이더리움 재단은 도둑맞은 이더리움 거래자들을 위해 조치를 취해야 했다. 당시 이더리움 재단은 소프트포크와 하드포크 2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모든 피해자들이 ETH를 돌려받을 수 있는 하드포크가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2016년 7월 20일 하드포크가 단행됐고, 이더리움 개발진들의 조치로 해킹된 ETH는 휴지 조각이 됐다.
문 대표는 “현재까진 블록체인의 기술적 측면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앞으로는 블록체인에 담긴 정치적 함의와 거버넌스 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문 대표는 오는 27~28일 이틀간 진행되는 이더리움 개발자 콘퍼런스 ‘이드콘 한국 2019’에서 ‘블록체인과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다양한 정치사회적 화두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표는 첫째 날 발표한다.
/도예리기자 yeri.do@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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