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블록체인 취재를 시작했던 지난해 초, 들리는 모든 이야기가 신기했다. 블록체인으로 세상을 바꾼단다. 어디서나 통용되는 암호화폐 기축통화를 만든다고도 했고, SNS부터 쇼핑, 보험 심지어 소개팅 분야에도 블록체인을 적용한다고 했다. 블록체인 기술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보였다. “과연 제2의 인터넷이라 불릴 만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욱 눈이 동그래지는 부분은 이들의 중단기 로드맵이었다. 1~2년, 길게는 5년 안에 대단한 기술과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했다. 약 2년이 지난 지금, 당시 만났던 프로젝트 중 상용화에 성공해 일상에서 쓰이는 서비스는 단 한 개도 없다.
마켓컬리 등 새벽배송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온라인 쇼핑이 부상할 때도 블록체인을 이용한 쇼핑몰은 나오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은 여전히 신용카드를 쓰고, 은행거래를 이용한다. 암호화폐 거래소 밖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암호화폐도 없다.
암호화폐 결제가 가능한 실물 카드를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1년 반 가까이 신용카드 빈 넘버(BIN)를 발급받지 못해 심정지 상태와 다름없다. 블록체인에 문서 정보를 저장하겠다는 업체들은 개인정보 보호법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ICO를 통해 기존 100억 원이 넘는 꽤 많은 자금을 모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현재는 겨우 숨을 쉬고 있는 프로젝트도 넘쳐난다. 그렇지 세상을 바꾸는 게 그렇게 쉬울 리 없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절로 블록체인의 실효성, 필요성 등 각종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소개팅을 하는데 왜 블록체인이 필요할까?’, ‘쇼핑을 하는데 꼭 블록체인이 있어야 하나?’. 어쩌면 저 프로젝트들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세상을 꼭 블록체인으로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질문이 머리를 가득 채울 때쯤 한 업계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블록체인을 꼭 거창한 사업에만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며 “지각비 기록 같은 위변조 방지가 필요한 일상의 작은 부분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 가는 말이었다. 우리 일상에는 출퇴근 확인, 출석체크, 단골 식당 장부 확인 등 위변조 가능성이 높아 블록체인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 꼭 코인 보상이 없어도, 전 세계에 노드가 퍼져 있지 않아도 된다. 소규모로 거래 내역을 공유하고 위변조를 막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블록체인의 존재 이유가 설명될 것 같았다.
검찰이 ‘타다는 불법 콜택시’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후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타다도 불법이 됐다. 타다를 두고 공유경제다, 혁신이다, 4차 산업혁명이다 말이 많았지만, 검찰은 결국 이를 불법으로 간주했다. 택시 산업 구조 하나 바꾸기 힘든데, 블록체인으로 순식간에 온 세상을 다 바꾸기는 무리지 않을까?
블록체인은 요술램프 속 ‘지니’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가지고 있기만 하면 세상을 저절로 바꿔주지는 않는다.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부터 파고들어야 한다. 일상도 바꾸지 못하면 세상은 더더욱 바꾸지 못한다. 혹시 모르지 않나, 블록체인으로 바꾼 일상이 나중에는 세상이 될지.
/노윤주기자 daisyroh@decenter.kr
- 노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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