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청년들 사이에서 코딩 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숫자와 거리가 먼 문과생들까지도 코딩 배우기에 나선다. 대학전공만으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코딩 학습 시간이 짧은 문과생들이 이공계 출신 개발자를 따라잡기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후 정보기술(IT) 스타트업 커먼컴퓨터에 취업해 마케터로 활동하고 있는 조주은 씨는"무작정 코딩을 배우기에 앞서 코딩이 왜 필요한지부터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개발자로 진로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본인이 가고자 하는 분야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섰을 때 코딩을 배우라는 이야기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커먼컴퓨터 사무실에서 조 씨를 만나 문과생의 IT 스타트업 취업기를 들었다.
조 마케터는 커먼컴퓨터에서 인턴 기간 6개월을 거쳐 이번 달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커먼컴퓨터는 인공지능 관련 대규모 연산이 가능한 블록체인 'AI 네트워크(AI Network)', 오픈리소스 플랫폼 '아이나이즈(Ainize)', 크리에이터와 팬을 위한 소셜 플랫폼 '어팬(aFan)'을 운영 중인 IT 스타트업이다.
그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주변 친구들 대다수는 공무원 시험이나 공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그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면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며 진로를 정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다닌 국민대학교는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으로, 신입생 모두가 코딩 과목을 이수해야 했다. 이때 코딩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관심이 이어져 4학년 1학기 때 오픈소스 거버넌스 융합전공을 선택했다. 미국 대학 랩실에서 연구할 기회도 주어졌다. 그러다 지인 소개로 커먼컴퓨터와 연이 닿았다.
그는 “코딩도 배우고, 융합전공도 했고, 미국 대학에서 연구도 했지만 결국 내 직무는 마케터”라며 웃었다. 그는 “마케터의 주요 업무는 마케팅을 잘하는 것이고, 코딩 역량은 여기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밝혔다. 그가 비전공생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코딩부터 배우는 걸 말리는 까닭이다. 그는 “코딩 지식보다는 기술 동향을 잘 알아야 할 것 같다”며 “인공지능(AI) 서비스, 클라우드 기반 기술 AI 플랫폼 등 지금 주목받고 있는 기술 동향을 아는 게 개발자들과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업계 동향을 공부하기 위한 커뮤니티로 ‘TensorFlow Korea’,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스여일삶)’를 추천했다.
조 마케터는 최신 기술 동향, 업계 동향을 파악한 뒤엔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해커톤에 나가보라고 말했다. 그는 “문과생은 할 수 있는 직무가 기획자로 한정돼 있다”며 “해커톤에 나가 개발자, 디자이너와 미친듯이 일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고, 스펙을 쌓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경험이 파이썬(Python), 자바(Java)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코딩을 배우다가 어려워서 좌절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봤다”며 “막연히 두려움과 취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코딩을 배우려 하기보단 이 기술로 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마케터는 스타트업에선 바로 신입사원으로 취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보통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채용전환형 인턴을 거쳐 입사한다. 그 역시 이 같은 절차를 거쳤다. 그는 “학점 등으로는 실무 능력을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턴 기간 동안 회사와 핏이 맞는지, 욕심이 많고 능동적인지 등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서류 심사, 대면 인터뷰, PT 면접 등을 거쳐 인턴에 합격했다. 그는 “PT 면접의 경우 아이나이즈 플랫폼 관련해 마케팅 방안과 커뮤니티 증진 방안 2가지 주제를 주고 여기에 대해 15분 간 발표하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인턴을 하면서 마케팅 뿐 아니라 HR, 디자인, 프로젝트 기획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조 마케터는 “커먼컴퓨터 회사 내부에 구글, 네이버 출신 등 각 분야 실력자가 많아서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전했다.
단점으로는 “대기업처럼 사수 개념이 없기에 뭐든지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소수 인원이 많은 일을 하기에 모두가 바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신입 입장에선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물어보기에 눈치가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커뮤니티에 들어간 것도 있다”며 “스스로 일을 찾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스타트업에 잘 맞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턴이든 경력이든 누구나 주도적으로 업무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단점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스타트업이라고 다 같은 스타트업이 아니기 때문에 일하고 싶은 분야와 해당 기업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고려한 뒤 지원하라”고 전했다.
/도예리 기자 yeri.do@
- 도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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