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유력 대선 후보들 간 공약 경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2030 세대가 이번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캐스팅 보터'로 떠오르면서 젊은 층의 표심을 얻기 위한 맞춤형 공약들이 눈에 뛴다. 대표적인 것이 ‘암호화폐 관련 공약'이다. 암호화폐 투자자 가운데 워낙 젊은 층의 비율이 높다보니 각 후보 캠프들은 ‘2030 세대 공략책’의 하나로 암호화폐 관련 공약 다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 당 후보 등 유력 대선 후보들은 지난해부터 친(親)암호화폐 발언을 이어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암호화폐 과세의 유예를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후보들의 철학에 따라 차이점도 보인다. 디센터는 세 후보의 암호화폐 관련 과거 발언과 공약들을 비교·분석 해봤다.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이 후보 직속 미래경제위원회와 디지털·혁신대전환위원회를 구성해 암호화폐를 비롯해 4차 산업 관련 공약에 집중하고 있다. 각 위원회장으론 평소 암호화폐 관련 목소리를 내왔던 이광재 의원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들은 대체불가능한토큰(NFT) 등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을 택했다. 이 후보 선거 자금 후원자들에게 NFT 영수증을 발행하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직접 NFT를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 6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는 이 후보의 새해 메시지를 담은 NFT를 발행해 세계 최대 NFT 마켓플레이스 ‘오픈씨(OpenSea)’에서 경매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선거 운동 창구로 떠오르고 있는 유튜브 방송에서도 친암호화폐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5일 경제 전문 유튜브채널 ‘삼프로TV’에 출연해 “암호화폐 투자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물자산이 담보된 일종의 공인된 암호화폐 같은 것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출연한 게임 전문 채널 ‘G식백과’에서는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P2E(Play to Earn) 게임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이어갔다. 이 후보는 이날 방송에서 “P2E 게임이 세계적인 흐름인 만큼 나쁘게 볼 필요 없다”며 “오히려 빠르게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밝혔다.
암호화폐 관리·감독 체계의 재정비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이 후보는 암호화폐 관련 불법 행위를 전담하는 디지털자산관리감독원 설립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디지털자산관리감독원은 금융감독원과 비슷한 형태이되 일방적인 규제가 아닌 자율규제의 선을 지킬 수 있도록 운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일각에선 이 후보가 거침없이 내놓는 암호화폐 공약이 인기 영합주의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이 후보가 지난 11월 부동산 개발이익을 전국민에게 암호화폐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밝힌 데 대해 업계를 중심으로 적잖은 반발이 일었다. 국가 주도 암호화폐 구축에 대비한 실제적인 설계가 없이 내놓은 공약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반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암호화폐와 관련해 다소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지난해 암호화폐 과세 유예가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을 때 과세 반대 의견을 피력한 이후엔 암호화폐와 관련해 따로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후보와 같은 날 공개된 윤 후보의 ‘삼프로TV' 영상에서도 암호화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자본시장 전반에 대해선 “시장에서 불공정거래에 대한 관리를 엄정하게 해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후보가 암호화폐와 관련해 가장 확실히 입장 표명을 한 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전인 지난해 8월 청년 싱크탱크 ‘상상23’ 세미나에서다. 이날 윤 후보는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한 미국도 암호화폐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거래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도 미국의 모델을 벤치마킹해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의 암호화폐 거래소 단속 발언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윤 후보는"금융 현상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현상을 받아들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며 “현재 중국이 암호화폐 거래를 불법화했고 2018년 우리나라도 법무부 장관이 단속하겠다고 해 굉장한 충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 선대위 측이 그간 이렇다 할 암호화폐 공약을 내놓지 못한 데에는 국힘 선대위 내부에서 계속됐던 내홍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지난 6일 이준석 대표가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가까스로 갈등을 봉합한 만큼 암호화폐를 비롯한 주요 공약 발표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7일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이 대표는 하락세를 타고 있는 20대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해 암호화폐 등 2030 관련 정책을 내세울 예정이다. 이 대표는 “특히 암호화폐의 경우 단순히 과세 유예 이상의 더 구체적인 정책을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보 보안 업체 안랩을 설립한 프로그래머 출신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IT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강점으로 내세운다.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며 시장에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액이 폭증하고 관련 사기 사건도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가상자산 열풍과 제도화 모색’ 간담회에서 안 후보는 “현재 정부의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한심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안 후보는 “제가 2018년에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투명성을 강화하고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의 관리 감독의 기능을 가지고 투자자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암호화페 투자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도 덧붙였다.안 후보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는 그 파급력과 암호화폐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클 수도 있다”며 “지금은 제대로 공부를 해서 정보에 기반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랩이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에 투자해 1,000배 넘는 수익률을 본 경험담을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12월 13일 국민의당 선대위 회의에서 안 후보는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만일 10년 전에 348조 9,000억 원이었던 국민연금 적립금의 0.286%인 1조 원만이라도 이런 회사에 투자했으면 연금 고갈 걱정을 덜었을 것”이라며 “과학기술 중심 사고를 기반으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통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과학과 실용정신으로 정치와 국정운영 방향의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며 과학 분야에 대한 국정운영 전환을 약속했다.
- 김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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